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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lassics Wiki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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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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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5T01:21: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glossary review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정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lt;br /&gt;
==큐레이션 콘텐츠==&lt;br /&gt;
===콘텐츠 1: 교과서 보조 읽기 자료===&lt;br /&gt;
====Prompt====&lt;br /&gt;
당신은 고등학교 미술 교사입니다. 아래 XML 데이터를 활용하여 &lt;br /&gt;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읽기 자료를 작성해주세요.&lt;br /&gt;
&lt;br /&gt;
# 작성 규칙&lt;br /&gt;
1. &amp;lt;origin_myth&amp;gt;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룡연의 제발을 이야기체로 풀어쓰세요.&lt;br /&gt;
2.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의 어휘와 문장으로 작성하세요.&lt;br /&gt;
3. 어려운 한자어가 처음 등장할 때는 괄호 안에 뜻풀이를 넣어주세요.&lt;br /&gt;
4. 문체는 교과서 읽기 자료에 어울리는 서술체(~였다, ~하였다)로 통일하세요.&lt;br /&gt;
5. 전체 분량은 300자 내외로 작성하세요.&lt;br /&gt;
6. 마지막에 &amp;quot;생각해봅시다&amp;quot; 질문을 2개 추가하세요.&lt;br /&gt;
&lt;br /&gt;
# 출력 형식&lt;br /&gt;
제목: [작품명]&lt;br /&gt;
본문: [작성된 내용]&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1.&lt;br /&gt;
2.&lt;br /&gt;
&lt;br /&gt;
# Input Data&lt;br /&gt;
&amp;lt;text_unit id=&amp;quot;이인상-구룡연도&amp;quo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제목: 구룡연도&lt;br /&gt;
&lt;br /&gt;
본문: 1737년 가을, 능호관 이인상은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금강산의 아홉 번째 연못인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 바쳤다. 이인상은 털이 다 빠진 붓인 독호(禿毫)와 옅은 먹물인 담매(淡煤)를 사용하였다. 그는 바위의 겉모습 대신 굳센 뼈대를 그리는 데 집중하였고, 화려한 색채도 칠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를 가볍게 여겨 성의 없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깊은 교감, 즉 심회(心會)를 담아내기 위한 깊은 뜻이었다.&lt;br /&gt;
&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lt;br /&gt;
1. 이인상이 화려한 색을 칠하지 않고 뼈대 위주로 그림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까요?&lt;br /&gt;
&lt;br /&gt;
2.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함께 가보았던 풍경을 그림으로 선물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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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C%9D%B4%EC%9D%B8%EC%83%81-%EA%B5%AC%EB%A3%A1%EC%97%B0%EB%8F%84&amp;diff=4718</id>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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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4T06:47: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결과 예시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정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lt;br /&gt;
==큐레이션 콘텐츠==&lt;br /&gt;
===콘텐츠 1: 교과서 보조 읽기 자료===&lt;br /&gt;
====Prompt====&lt;br /&gt;
당신은 고등학교 미술 교사입니다. 아래 XML 데이터를 활용하여 &lt;br /&gt;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읽기 자료를 작성해주세요.&lt;br /&gt;
&lt;br /&gt;
# 작성 규칙&lt;br /&gt;
1. &amp;lt;origin_myth&amp;gt;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룡연의 제발을 이야기체로 풀어쓰세요.&lt;br /&gt;
2.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의 어휘와 문장으로 작성하세요.&lt;br /&gt;
3. 어려운 한자어가 처음 등장할 때는 괄호 안에 뜻풀이를 넣어주세요.&lt;br /&gt;
4. 문체는 교과서 읽기 자료에 어울리는 서술체(~였다, ~하였다)로 통일하세요.&lt;br /&gt;
5. 전체 분량은 300자 내외로 작성하세요.&lt;br /&gt;
6. 마지막에 &amp;quot;생각해봅시다&amp;quot; 질문을 2개 추가하세요.&lt;br /&gt;
&lt;br /&gt;
# 출력 형식&lt;br /&gt;
제목: [작품명]&lt;br /&gt;
본문: [작성된 내용]&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1.&lt;br /&gt;
2.&lt;br /&gt;
&lt;br /&gt;
# Input Data&lt;br /&gt;
&amp;lt;text_unit id=&amp;quot;이인상-구룡연도&amp;quo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lt;br /&gt;
&lt;br /&gt;
제목: 구룡연도&lt;br /&gt;
&lt;br /&gt;
본문: 1737년 가을, 능호관 이인상은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금강산의 아홉 번째 연못인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 바쳤다. 이인상은 털이 다 빠진 붓인 독호(禿毫)와 옅은 먹물인 담매(淡煤)를 사용하였다. 그는 바위의 겉모습 대신 굳센 뼈대를 그리는 데 집중하였고, 화려한 색채도 칠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를 가볍게 여겨 성의 없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깊은 교감, 즉 심회(心會)를 담아내기 위한 깊은 뜻이었다.&lt;br /&gt;
&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lt;br /&gt;
1. 이인상이 화려한 색을 칠하지 않고 뼈대 위주로 그림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까요?&lt;br /&gt;
&lt;br /&gt;
2.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함께 가보았던 풍경을 그림으로 선물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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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4T06:46: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결과 예시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정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lt;br /&gt;
==큐레이션 콘텐츠==&lt;br /&gt;
===콘텐츠 1: 교과서 보조 읽기 자료===&lt;br /&gt;
====Prompt====&lt;br /&gt;
당신은 고등학교 미술 교사입니다. 아래 XML 데이터를 활용하여 &lt;br /&gt;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읽기 자료를 작성해주세요.&lt;br /&gt;
&lt;br /&gt;
# 작성 규칙&lt;br /&gt;
1. &amp;lt;origin_myth&amp;gt;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룡연의 제발을 이야기체로 풀어쓰세요.&lt;br /&gt;
2.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의 어휘와 문장으로 작성하세요.&lt;br /&gt;
3. 어려운 한자어가 처음 등장할 때는 괄호 안에 뜻풀이를 넣어주세요.&lt;br /&gt;
4. 문체는 교과서 읽기 자료에 어울리는 서술체(~였다, ~하였다)로 통일하세요.&lt;br /&gt;
5. 전체 분량은 300자 내외로 작성하세요.&lt;br /&gt;
6. 마지막에 &amp;quot;생각해봅시다&amp;quot; 질문을 2개 추가하세요.&lt;br /&gt;
&lt;br /&gt;
# 출력 형식&lt;br /&gt;
제목: [작품명]&lt;br /&gt;
본문: [작성된 내용]&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1.&lt;br /&gt;
2.&lt;br /&gt;
&lt;br /&gt;
# Input Data&lt;br /&gt;
&amp;lt;text_unit id=&amp;quot;이인상-구룡연도&amp;quo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 예시====&lt;br /&gt;
&lt;br /&gt;
제목: 구룡연도&lt;br /&gt;
&lt;br /&gt;
본문: 1737년 가을, 능호관 이인상은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금강산의 아홉 번째 연못인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 바쳤다. 이인상은 털이 다 빠진 붓인 독호(禿毫)와 옅은 먹물인 담매(淡煤)를 사용하였다. 그는 바위의 겉모습 대신 굳센 뼈대를 그리는 데 집중하였고, 화려한 색채도 칠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를 가볍게 여겨 성의 없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깊은 교감, 즉 심회(心會)를 담아내기 위한 깊은 뜻이었다.&lt;br /&gt;
&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lt;br /&gt;
1. 이인상이 화려한 색을 칠하지 않고 뼈대 위주로 그림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까요?&lt;br /&gt;
&lt;br /&gt;
2.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함께 가보았던 풍경을 그림으로 선물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C%9D%B4%EC%9D%B8%EC%83%81-%EA%B5%AC%EB%A3%A1%EC%97%B0%EB%8F%84&amp;diff=4715</id>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C%9D%B4%EC%9D%B8%EC%83%81-%EA%B5%AC%EB%A3%A1%EC%97%B0%EB%8F%84&amp;diff=4715"/>
		<updated>2026-06-04T06:45: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정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lt;br /&gt;
==큐레이션 콘텐츠==&lt;br /&gt;
===콘텐츠 1: 교과서 보조 읽기 자료===&lt;br /&gt;
====Prompt====&lt;br /&gt;
당신은 고등학교 미술 교사입니다. 아래 XML 데이터를 활용하여 &lt;br /&gt;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읽기 자료를 작성해주세요.&lt;br /&gt;
&lt;br /&gt;
# 작성 규칙&lt;br /&gt;
1. &amp;lt;origin_myth&amp;gt;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룡연의 제발을 이야기체로 풀어쓰세요.&lt;br /&gt;
2.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의 어휘와 문장으로 작성하세요.&lt;br /&gt;
3. 어려운 한자어가 처음 등장할 때는 괄호 안에 뜻풀이를 넣어주세요.&lt;br /&gt;
4. 문체는 교과서 읽기 자료에 어울리는 서술체(~였다, ~하였다)로 통일하세요.&lt;br /&gt;
5. 전체 분량은 300자 내외로 작성하세요.&lt;br /&gt;
6. 마지막에 &amp;quot;생각해봅시다&amp;quot; 질문을 2개 추가하세요.&lt;br /&gt;
&lt;br /&gt;
# 출력 형식&lt;br /&gt;
제목: [작품명]&lt;br /&gt;
본문: [작성된 내용]&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1.&lt;br /&gt;
2.&lt;br /&gt;
&lt;br /&gt;
# Input Data&lt;br /&gt;
&amp;lt;text_unit id=&amp;quot;이인상-구룡연도&amp;quot;&amp;gt;&lt;br /&gt;
&lt;br /&gt;
&lt;br /&gt;
====결과 예시====&lt;br /&gt;
제목: 구룡연도&lt;br /&gt;
본문: 1737년 가을, 능호관 이인상은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금강산의 아홉 번째 연못인 구룡연(九龍淵)을 구경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 그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 바쳤다. 이인상은 털이 다 빠진 붓인 독호(禿毫)와 옅은 먹물인 담매(淡煤)를 사용하였다. 그는 바위의 겉모습 대신 굳센 뼈대를 그리는 데 집중하였고, 화려한 색채도 칠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를 가볍게 여겨 성의 없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깊은 교감, 즉 심회(心會)를 담아내기 위한 깊은 뜻이었다.&lt;br /&gt;
&lt;br /&gt;
생각해봅시다&lt;br /&gt;
1. 이인상이 화려한 색을 칠하지 않고 뼈대 위주로 그림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까요?&lt;br /&gt;
2.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함께 가보았던 풍경을 그림으로 선물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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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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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4T06:38: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glossary review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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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정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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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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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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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4T06:37: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기존 번역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수정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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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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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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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任丈 || 삼청임장 || general || &amp;lt;del&amp;gt; 삼청(三淸)은 호이고 임장(任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 필자가 모시고 구룡연을 관람한 인물. || &amp;lt;/del&amp;gt;&lt;br /&gt;
|-&lt;br /&gt;
| 추가 || Place || 三淸 || 삼청 || general || 임어르신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추정된다. ||&lt;br /&gt;
|-&lt;br /&gt;
| 추가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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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 || 삼청 || general || &amp;lt;del&amp;gt;이인상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한 임장(任丈)의 호(號)로 추정된다. || &amp;lt;/del&amp;gt;&amp;lt;br/&amp;gt;이인상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한 임장(任丈)의 거주지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 수정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del&amp;gt; 이인상이 동행했던 인물로, &#039;삼청&#039;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amp;lt;/del&amp;gt;&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호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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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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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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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glossary review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amp;lt;del&amp;gt;색과 윤기를 베풀지 않음. 채색을 하지 않았다는 뜻. || &amp;lt;/del&amp;gt;&amp;lt;br/&amp;gt;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 || 삼 || general || &amp;lt;del&amp;gt;이인상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한 임장(任丈)의 호(號)로 추정된다. || &amp;lt;/del&amp;gt;&amp;lt;br/&amp;gt;이인상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한 임장(任丈)의 거주지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 수정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del&amp;gt; 이인상이 동행했던 인물로, &#039;삼청&#039;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amp;lt;/del&amp;gt;&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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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초안===&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lt;br /&gt;
! 작업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추가 || Concept || 色澤 || 색택 || this_text_unit || 빛깔과 광택을 가리키는 말 || 색택을 베풀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lt;br /&gt;
|-&lt;br /&gt;
| 삭제 || Person || 三淸 || 삼 || general || &amp;lt;del&amp;gt;이인상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한 임장(任丈)의 호(號)로 추정된다. || &amp;lt;/del&amp;gt;&amp;lt;br/&amp;gt;이인상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한 임장(任丈)의 거주지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 수정 || Person || 任丈 || 임장 || this_text_unit || 임어르신이라는 뜻이다.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 || &amp;lt;del&amp;gt; 이인상이 동행했던 인물로, &#039;삼청&#039;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amp;lt;/del&amp;gt;&amp;lt;br/&amp;gt;이인상이 금강산 유람을 함께했던 인물로, 임안세(任安世, 1691∼1756)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 수정 || Object || 禿毫 || 독 || this_text_unit || 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 &amp;lt;del&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 &amp;lt;/del&amp;gt;&amp;lt;br/&amp;gt; 몽당붓을 사용하여 미학적 효과를 의도했음을 나타낸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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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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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초안 (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이인상-구룡연 | xml=glossary_draft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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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작품/작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1(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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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작품/작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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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607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1(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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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낭세녕-백해청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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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9T02:21: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새 문서:  200px  == 작품/작가 == * 제목: 백해청도(白海靑圖) * 작품 소개: 해동에서 진상된 희귀한 흰 매를 그리고, 이것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징조임을 강조한 기록화 * 화가: [https://ko.wikipedia.org/wiki/주세페_카스틸리오네_(화가) 낭세녕(郞世寧, Giuseppe Castiglione)] * 제발 저자: 건륭제(乾隆帝) - 청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1735...&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백해청도.jpg | right | 200px]]&lt;br /&gt;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백해청도(白海靑圖)&lt;br /&gt;
* 작품 소개: 해동에서 진상된 희귀한 흰 매를 그리고, 이것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징조임을 강조한 기록화&lt;br /&gt;
* 화가: [https://ko.wikipedia.org/wiki/주세페_카스틸리오네_(화가) 낭세녕(郞世寧, Giuseppe Castiglione)]&lt;br /&gt;
* 제발 저자: 건륭제(乾隆帝) - 청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1735년 ~ 1796년)&lt;br /&gt;
* 시대: 1758&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낭세녕-백해청도 | xml=hanmun_punctuated | xsl=Text.xsl}}&lt;br /&gt;
&lt;br /&gt;
===번역 초안===&lt;br /&gt;
{{box | content=&lt;br /&gt;
사나운 새가 해동에서 날아왔는데,  (보통 매는) 푸른빛으로 이름을 얻어 대체로 푸른색이라네.&lt;br /&gt;
뛰어난 자태와 흰 깃털은 참으로 보기 드무니, 이 얼마나 그 모습이 뛰어나고 또 웅장한가.&lt;br /&gt;
굳이 상서롭다고 자랑하지 않아도 진귀하고 깨끗하며, 신령한 기운은 옥빛을 받아 특별하고 뛰어나네.&lt;br /&gt;
두 눈은 붉은 보석을 매단 듯한 구슬이요, 온몸은 배꽃이 흩날려 눈이 된 듯하네.&lt;br /&gt;
응방의 나무 상자에 맡겨 기르게 하고, 곡식과 고기를 대주는 일을 맡은 관리가 있네.&lt;br /&gt;
집을 지어 살게 하는 것은 잘못임을 알 수 있고, 오방의 젊은이들에 대한 경계는 생각할 만하네.&lt;br /&gt;
이미 길들여 길렀으니 한번 시험해 보려, 금실 끈 풀고 비취 팔토시를 팔에서 막 벗으니.&lt;br /&gt;
날개를 드리우고 신묘하게 거친 덤불 속 먹이를 덮치니, 구름 속으로 달아나는 꿩을 어찌 능히 잡지 못하겠는가.&lt;br /&gt;
만약 산과 숲의 새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맹금들은 장차 굶어 죽어 하나도 남지 않으리.&lt;br /&gt;
사람에게 쓰이는 것과 스스로 살아가는 것, 힘을 들이고 들이지 않는 것의 이치는 본래 당연하네.&lt;br /&gt;
힘을 들이고 들이지 않음의 이치가 본래 당연하니, 아, 사람이 어찌 새이겠는가,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으리오.&lt;br /&gt;
}}&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낭세녕-백해청도 | xml=glossary_reviewed | xsl=Glossary.xsl | height=600px | full_screen=Yes}}&lt;br /&gt;
&lt;br /&gt;
===수정 번역===&lt;br /&gt;
{{Ccti_xslt | project=s2601031 | id=낭세녕-백해청도 | xml=translation_draft | xsl=Text.xsl | height=200px}}&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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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5T02:43: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기존 번역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1(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C%9D%B4%EC%9D%B8%EC%83%81-%EA%B5%AC%EB%A3%A1%EC%97%B0%EB%8F%84&amp;diff=4029</id>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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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번역2 (Gemini 2.5 Pro)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1(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번역 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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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5T02:42:2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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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 1(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번역2 (Gemini 2.5 Pro)===&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기존 번역===&lt;br /&gt;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lt;br /&gt;
이인상 재배.&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 돌베개, 2018, 200면.&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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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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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glossary review===&lt;br /&gt;
&amp;lt;glossary status=&amp;quot;draft&amp;quot; model=&amp;quot;Gemini2.5pro&amp;quot;&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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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sense_note&amp;gt;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된 인물이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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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definition&amp;gt;성이 임(任)씨인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 &#039;丈&#039;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이인상이 동행했던 인물로, &#039;삼청&#039;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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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term&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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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sense_note&amp;gt;이 글에서는 &#039;以獻(바치기 위하여)&#039;에서 목적을, &#039;以禿毫淡煤(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039;에서 수단을 나타낸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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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definition&amp;gt;&#039;그리하여&#039;, &#039;그런데&#039;의 의미를 가지는 접속사. 앞선 내용과 뒤의 내용을 연결하며, 때로는 전환의 의미를 나타낸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과거의 경험(구룡연 유람)과 현재의 행위(그림을 그림)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amp;lt;/sense&amp;gt;&lt;br /&gt;
	&amp;lt;/term&amp;gt;&lt;br /&gt;
	&amp;lt;term type=&amp;quot;Object&amp;quot; id=&amp;quot;&amp;quot;&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hanmun&amp;gt;禿毫&amp;lt;/hanmun&amp;gt;&lt;br /&gt;
			&amp;lt;korean&amp;gt;독호&amp;lt;/korean&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sense scope=&amp;quot;general&amp;quot;&amp;gt;&lt;br /&gt;
			&amp;lt;definition&amp;gt;털이 닳아 빠진 붓. 일부러 사용하여 마르고 거친 필선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작가의 검소함 또는 의도된 미학적 효과를 암시한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amp;lt;/sense&amp;gt;&lt;br /&gt;
	&amp;lt;/term&amp;gt;&lt;br /&gt;
	&amp;lt;term type=&amp;quot;Concept&amp;quot; id=&amp;quot;&amp;quot;&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hanmun&amp;gt;寫骨&amp;lt;/hanmun&amp;gt;&lt;br /&gt;
			&amp;lt;korean&amp;gt;사골&amp;lt;/korean&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sense scope=&amp;quot;general&amp;quot;&amp;gt;&lt;br /&gt;
			&amp;lt;definition&amp;gt;&#039;뼈대를 그리다&#039;는 뜻으로, 사물의 외형적 묘사(肉)가 아닌 본질과 정신(骨)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는 동양화의 중요한 화론(畫論)이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이 그림이 색채나 기교 없이 사물의 본질을 담아내려 했음을 밝히는 핵심 용어이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amp;lt;/sense&amp;gt;&lt;br /&gt;
	&amp;lt;/term&amp;gt;&lt;br /&gt;
	&amp;lt;term type=&amp;quot;Grammar&amp;quot; id=&amp;quot;&amp;quot;&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hanmun&amp;gt;非敢~也&amp;lt;/hanmun&amp;gt;&lt;br /&gt;
			&amp;lt;korean&amp;gt;비감~야&amp;lt;/korean&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sense scope=&amp;quot;general&amp;quot;&amp;gt;&lt;br /&gt;
			&amp;lt;definition&amp;gt;&#039;감히 ~하는 것은 아니다&#039;라는 뜻의 문형. 자신의 행위에 대한 오해를 강하게 부정하거나 해명할 때 사용된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색을 쓰지 않은 것이 결코 무례하거나 성의 없는 행동이 아님을 강조한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amp;lt;/sense&amp;gt;&lt;br /&gt;
	&amp;lt;/term&amp;gt;&lt;br /&gt;
	&amp;lt;term type=&amp;quot;Concept&amp;quot; id=&amp;quot;&amp;quot;&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hanmun&amp;gt;心會&amp;lt;/hanmun&amp;gt;&lt;br /&gt;
			&amp;lt;korean&amp;gt;심회&amp;lt;/korean&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sense scope=&amp;quot;general&amp;quot;&amp;gt;&lt;br /&gt;
			&amp;lt;definition&amp;gt;마음으로 깨달아 앎. 언어나 형식을 통하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하는 경지를 의미한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이 그림의 진정한 가치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음을 말한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amp;lt;/sense&amp;gt;&lt;br /&gt;
	&amp;lt;/term&amp;gt;&lt;br /&gt;
	&amp;lt;term type=&amp;quot;Person&amp;quot; id=&amp;quot;&amp;quot;&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hanmun&amp;gt;李麟祥&amp;lt;/hanmun&amp;gt;&lt;br /&gt;
			&amp;lt;korean&amp;gt;이인상&amp;lt;/korean&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sense scope=&amp;quot;this_text_unit&amp;quot;&amp;gt;&lt;br /&gt;
			&amp;lt;definition&amp;gt;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1710-1760). 이 글과 그림의 작가이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글의 말미에 자신의 이름을 밝혀 작가를 명시하고 있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amp;lt;/sense&amp;gt;&lt;br /&gt;
	&amp;lt;/term&amp;gt;&lt;br /&gt;
	&amp;lt;term type=&amp;quot;Concept&amp;quot; id=&amp;quot;&amp;quot;&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hanmun&amp;gt;再拜&amp;lt;/hanmun&amp;gt;&lt;br /&gt;
			&amp;lt;korean&amp;gt;재배&amp;lt;/korean&amp;gt;&lt;br /&gt;
		&amp;lt;/lemma&amp;gt;&lt;br /&gt;
		&amp;lt;sense scope=&amp;quot;general&amp;quot;&amp;gt;&lt;br /&gt;
			&amp;lt;definition&amp;gt;두 번 절함. 편지나 글의 말미에 써서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다.&amp;lt;/definition&amp;gt;&lt;br /&gt;
			&amp;lt;sense_note&amp;gt;글을 마무리하며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표현이다.&amp;lt;/sense_note&amp;gt;&lt;br /&gt;
		&amp;lt;/sense&amp;gt;&lt;br /&gt;
	&amp;lt;/term&amp;gt;&lt;br /&gt;
&amp;lt;/glossary&amp;gt;&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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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원문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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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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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metadata&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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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painter&amp;gt;이인상(李麟祥, 1710-1760)&amp;lt;/painte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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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hanmun_text&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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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appearance&amp;gt;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amp;lt;/appearance&amp;gt;&lt;br /&gt;
      &amp;lt;author&amp;gt;李麟祥&amp;lt;/author&amp;gt;&lt;br /&gt;
      &amp;lt;seal&amp;gt;雲軒&amp;lt;/seal&amp;gt;&lt;br /&gt;
      &amp;lt;seal&amp;gt;李麟祥印&amp;lt;/seal&amp;gt;&lt;br /&gt;
      &amp;lt;seal&amp;gt;天寶山人&amp;lt;/sea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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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text_unit&amp;gt;&lt;br /&gt;
&lt;br /&gt;
===오류 검사===&lt;br /&gt;
&lt;br /&gt;
{{ValidateXml | xml=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lt;br /&gt;
&lt;br /&gt;
== XML 구조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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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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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hanmun_text&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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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appearance&amp;gt;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amp;lt;/appearance&amp;gt;&lt;br /&gt;
      &amp;lt;author&amp;gt;李麟祥&amp;lt;/author&amp;gt;&lt;br /&gt;
      &amp;lt;seal&amp;gt;雲軒&amp;lt;/seal&amp;gt;&lt;br /&gt;
      &amp;lt;seal&amp;gt;李麟祥印&amp;lt;/seal&amp;gt;&lt;br /&gt;
      &amp;lt;seal&amp;gt;天寶山人&amp;lt;/sea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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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lt;/hanmun_text&amp;gt;&lt;br /&gt;
&amp;lt;/text_unit&amp;gt;&lt;br /&gt;
&lt;br /&gt;
===오류 검사===&lt;br /&gt;
&lt;br /&gt;
{{ValidateXml | xml=xml_문서명.xml}}&lt;br /&gt;
&lt;br /&gt;
== XML 구조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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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 Flash)===&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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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ckable button|[[ S2601031:이인상-구룡연도.xml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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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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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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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amp;amp;searchId=search&amp;amp;relicId=1084]&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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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원문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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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연보》, 돌베개, 2022, 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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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amp;lt;&amp;lt;능호관 이인상 연보&amp;gt;&amp;gt;, 돌베개, 2022,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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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출처: 박희병, &amp;lt;&amp;lt;능호관 이인상 연보&amp;gt;&amp;gt;, 돌베개, 2022,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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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출처: 박희병, &amp;lt;&amp;lt;능호관 이인상 연보&amp;gt;&amp;gt;, 돌베개, 2022,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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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출처: 박희병, &amp;lt;&amp;lt;능호관 이인상 연보&amp;gt;&amp;gt;, 돌베개, 2022,323면&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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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재질 : 종이&lt;br /&gt;
* 크기 : 세로 118.2cm, 가로 58.5cm&lt;br /&gt;
* 시대 :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93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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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시대: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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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시대: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번역(Gemini 3)===&lt;br /&gt;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lt;br /&gt;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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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C%9D%B4%EC%9D%B8%EC%83%81-%EA%B5%AC%EB%A3%A1%EC%97%B0%EB%8F%84&amp;diff=3656</id>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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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8T01:41: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시대: 조선, 1752년&lt;br /&gt;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br /&gt;
[[분류:2601B 과제]]&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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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이인상-구룡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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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8T01:40: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새 문서:  300px  == 작품/작가 == * 제목: 구룡연도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lt;/p&gt;
&lt;hr /&gt;
&lt;div&gt;[[파일: 이인상_구룡연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제목: 구룡연도&lt;br /&gt;
*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lt;br /&gt;
* 화가: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제발 저자: 이인상(李麟祥, 1710~1760)&lt;br /&gt;
* 시대: 조선, 1737년&lt;br /&gt;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丁巳秋, 陪三淸任丈&lt;br /&gt;
觀第九龍淵. 後十五年, 謹寫此幅以獻, 而乃以禿毫淡煤, 寫骨而不寫肉, 色&lt;br /&gt;
澤無施, 非敢慢也, 在心會. 李麟祥再拜.&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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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601B]]&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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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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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일:이인상 구룡연도.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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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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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낭세녕-취서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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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02:29: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한국어 번역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작품/작가==&lt;br /&gt;
* 작품 제목: 취서도(聚瑞圖)&lt;br /&gt;
* 화가: 낭세녕(郞世寧,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Giuseppe Castiglione, 1688~176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039;&#039;&#039;취서도&#039;&#039;&#039; 상서로운 것들을 모아 그리다&lt;br /&gt;
&lt;br /&gt;
황상께서 즉위하신 원년에 상서로운 징조가 거듭 나타났습니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고 여러 이삭이 합쳐진 곡식이 들판에 가득 열매를 맺었고, 한 줄기에서 두 꽃대가 나란히 핀 연꽃이 궁궐 안 연못에서 피었습니다. 신 낭세녕이 삼가 살펴본 후에, 이 상서로운 감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병에 꽂은 꽃을 삼가 모아 그렸습니다.&lt;br /&gt;
&lt;br /&gt;
옹정 원년 9월 15일, 해서(海西)의 신하 낭세녕이 공손히 그리다.&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lt;br /&gt;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ArtWork || 聚瑞圖 || 취서도 || general || 상서로운 징조(瑞)를 모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화제(畫題). || 제발의 전체 내용이 ‘상서의 징조를 기록’하는 취지임을 드러내는 제목이다.&lt;br /&gt;
|-&lt;br /&gt;
| Person || 皇上 || 황상(황제) || this_text_unit || 이 글에서 말하는 임금, 즉 옹정제를 높여 부르는 칭호. || 뒤의 御極·元年과 결합해 ‘즉위 첫해의 황제’로 구체화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御極 || 어극(즉위하여 제위에 오름) || general || 황제가 천자(제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 즉 즉위. || 皇上御極元年은 ‘황제 즉위 원년’으로 한 덩어리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元年 || 원년(즉위 첫해) || general || 새 황제가 즉위한 뒤 첫 해를 이르는 말. || 옹정 원년(1723)이라는 시대 배경을 지정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符瑞 || 부서(상서로운 징조) || general || 하늘이 내리는 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표(祥瑞). || 본문의 곡식·연꽃의 ‘기이한 형태’가 모두 符瑞의 예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疊呈 || 거듭 나타나다/연이어 바치다 || this_text_unit || ‘잇달아 나타나다’의 뜻으로, 상서가 연달아 드러남을 말한다. || 呈을 ‘보이다/드러내다’로 잡아 “부서가 거듭 나타났다”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分岐合穎 || 가지가 갈라지되 이삭이 하나로 합한 || this_text_unit || 줄기나 가지가 둘로 갈라졌는데 이삭(穎)이 하나로 붙은 기이한 곡식. || 뒤의 之穀과 한 덩어리(“분기합영지곡”)로 보아 ‘상서로운 곡식’의 수식어이다.&lt;br /&gt;
|-&lt;br /&gt;
| Object || 穀 || 곡식 || general || 벼·기장 등 먹을 수 있는 곡류. || 여기서는 ‘상서의 징조로 보고된 특이한 곡식’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 || ~의 / ~하는 || this_text_unit || 앞말을 뒤의 명사에 이어 주는 관형 표지(…의, …하는). || 分岐合穎之穀, 同心並蒂之蓮에서 ‘…한 곡식/연꽃’으로 풀어야 매끄럽다.&lt;br /&gt;
|-&lt;br /&gt;
| Grammar || 實 || 실로/참으로; (여기서는) 실제로 ~에 있다 || this_text_unit || 사실상·실제로 그러함을 강조하거나, ‘실제 존재함’을 나타낸다. || 實於原野는 “원야에 실제로 있었다/나타났다”로 장소 보어와 함께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Place || 原野 || 원야(들판) || general || 평야·들판, 궁궐 밖의 들. || 곡식의 발생 장소로 제시되어 ‘자연계에서의 상서’를 강조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同心並蒂 || 한마음으로 줄기를 함께한(쌍꽃의) || this_text_unit || 줄기(蒂)를 함께한 연꽃이 한 뿌리에서 나란히 핀 상서로운 형태(병체련). || 同心(한마음)이라는 덕목을 덧씌워 길상 의미를 강화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蓮 || 연(연꽃) || general || 연못에 피는 연꽃. || 본문에서는 ‘동심병체’라는 상서의 징조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開於 || ~에서 피다 || this_text_unit || 開(피다)에 장소 전치사 於가 붙어 ‘어디에서 피다’를 나타낸다. ||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는 “금지에서 피었다”로 문장 구조를 나누어 읽는다.&lt;br /&gt;
|-&lt;br /&gt;
| Place || 禁池 || 금지(궁중의 연못) || general || 궁궐 안(禁中)에 있는 연못. || 원야(궁 밖)와 대비되어, 상서가 궁중에도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臣 || 신(신하, 본인) || general || 임금 앞에서 자신을 낮춰 부르는 1인칭(신하의 자칭). || 서양인 화가라도 제발에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문체를 따라 臣으로 자칭한다.&lt;br /&gt;
|-&lt;br /&gt;
| Person || 郞世寧 || 낭세녕 || general || 청대 궁정에서 활동한 서양 출신 화가(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한자 이름. || 문장에서는 臣郞世寧으로, ‘신하 낭세녕’의 형식적 자칭으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拜觀 || 삼가 우러러 보다 || this_text_unit || 공손히(拜) 관람하다(觀)라는 겸양 표현. || 臣이 주어일 때 ‘황제의 물건/그림을 공손히 보았다’는 제발의 관례적 어법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下 || …하고 나서/…하여 || this_text_unit || 어떤 행위를 한 뒤에 이어지는 후행 행위를 이끄는 연결 표현. || 拜觀之下, 謹彙寫…는 “(삼가) 보고 난 뒤, (이에) 삼가 …을 그려”로 자연스럽게 잇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謹 || 삼가 || general || 겸손하고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공손 부사. || 謹彙寫, 恭畫 등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글·그림의 공손한 태도를 표시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彙寫 || 모아 그리다/취합하여 묘사하다 || this_text_unit || 여러 소재를 취합하여 한 폭에 그려 옮긴다는 뜻. || 瓶花(병에 꽂은 꽃)를 ‘길상 소재를 모아’ 정물로 구성했음을 말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瓶花 || 병화(병에 꽂은 꽃) || general || 병(花甁)에 꽂아 감상하는 꽃, 또는 이를 그린 정물 소재. || 본문의 곡식·연꽃 같은 길상 소재를 ‘병에 꽂은 정물’로 옮겨 그렸다는 핵심을 잡아야 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以 || …하여/…으로써 || this_text_unit || 앞의 행위를 수단·목적으로 삼아 뒤의 결과를 이끈다(…하여 …하다). || 以記祥應은 “(그림으로써) 상서로운 응함을 기록하기 위하여”로 목적 용법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記 || 기록하다 || general || 사실이나 일을 글·그림 등으로 남기다. || 회화 제작을 ‘기록 행위’로 정당화하는 제발의 전형적 논리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祥應 || 상응(상서로운 응험/징조의 나타남) || general || 길한 징조가 현실에서 응하여 나타나는 일. || 符瑞疊呈의 구체 사례(곡식·연꽃)를 총괄하는 말로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雍正元年 || 옹정 원년 || general || 청나라 옹정제 즉위 첫 해(1723). || 본문의 皇上御極元年과 주기(轉記)의 날짜가 서로 호응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九月十五日 || 9월 15일 || this_text_unit || 음력 9월 15일로, 제작·기록 시점을 적은 날짜. || 전각·제발에서 흔한 ‘년-월-일’ 표기이며, 뒤의 恭畫와 함께 연기(年記)를 이룬다.&lt;br /&gt;
|-&lt;br /&gt;
| Place || 海西 || 해서(서쪽 바다 너머, 서양) || this_text_unit || 중국에서 서양(바다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 || 海西臣郞世寧은 ‘서양 출신 신하 낭세녕’이라는 신분 표지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恭畫 || 삼가 그리다 || this_text_unit || 恭(삼가) + 畫(그리다)로, 황제에게 올리는 그림 제작을 겸손히 말하는 표현. || 전사(轉寫) 부분의 서명 관용구로, ‘봉명하여 그렸다’까지는 과도하게 덧붙이지 않도록 주의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B%82%AD%EC%84%B8%EB%85%95-%EC%B7%A8%EC%84%9C%EB%8F%84&amp;diff=2331</id>
		<title>S2601031:낭세녕-취서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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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02:28: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 작품/작가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작품/작가==&lt;br /&gt;
* 작품 제목: 취서도(聚瑞圖)&lt;br /&gt;
* 화가: 낭세녕(郞世寧,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Giuseppe Castiglione, 1688~1766)&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039;&#039;&#039;취서도&#039;&#039;&#039;&lt;br /&gt;
&lt;br /&gt;
황상께서 즉위하신 원년에 상서로운 징조가 거듭 나타났습니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고 여러 이삭이 합쳐진 곡식이 들판에 가득 열매를 맺었고, 한 줄기에서 두 꽃대가 나란히 핀 연꽃이 궁궐 안 연못에서 피었습니다. 신 낭세녕이 삼가 살펴본 후에, 이 상서로운 감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병에 꽂은 꽃을 삼가 모아 그렸습니다.&lt;br /&gt;
&lt;br /&gt;
옹정 원년 9월 15일, 해서(海西)의 신하 낭세녕이 공손히 그리다.&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lt;br /&gt;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ArtWork || 聚瑞圖 || 취서도 || general || 상서로운 징조(瑞)를 모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화제(畫題). || 제발의 전체 내용이 ‘상서의 징조를 기록’하는 취지임을 드러내는 제목이다.&lt;br /&gt;
|-&lt;br /&gt;
| Person || 皇上 || 황상(황제) || this_text_unit || 이 글에서 말하는 임금, 즉 옹정제를 높여 부르는 칭호. || 뒤의 御極·元年과 결합해 ‘즉위 첫해의 황제’로 구체화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御極 || 어극(즉위하여 제위에 오름) || general || 황제가 천자(제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 즉 즉위. || 皇上御極元年은 ‘황제 즉위 원년’으로 한 덩어리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元年 || 원년(즉위 첫해) || general || 새 황제가 즉위한 뒤 첫 해를 이르는 말. || 옹정 원년(1723)이라는 시대 배경을 지정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符瑞 || 부서(상서로운 징조) || general || 하늘이 내리는 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표(祥瑞). || 본문의 곡식·연꽃의 ‘기이한 형태’가 모두 符瑞의 예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疊呈 || 거듭 나타나다/연이어 바치다 || this_text_unit || ‘잇달아 나타나다’의 뜻으로, 상서가 연달아 드러남을 말한다. || 呈을 ‘보이다/드러내다’로 잡아 “부서가 거듭 나타났다”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分岐合穎 || 가지가 갈라지되 이삭이 하나로 합한 || this_text_unit || 줄기나 가지가 둘로 갈라졌는데 이삭(穎)이 하나로 붙은 기이한 곡식. || 뒤의 之穀과 한 덩어리(“분기합영지곡”)로 보아 ‘상서로운 곡식’의 수식어이다.&lt;br /&gt;
|-&lt;br /&gt;
| Object || 穀 || 곡식 || general || 벼·기장 등 먹을 수 있는 곡류. || 여기서는 ‘상서의 징조로 보고된 특이한 곡식’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 || ~의 / ~하는 || this_text_unit || 앞말을 뒤의 명사에 이어 주는 관형 표지(…의, …하는). || 分岐合穎之穀, 同心並蒂之蓮에서 ‘…한 곡식/연꽃’으로 풀어야 매끄럽다.&lt;br /&gt;
|-&lt;br /&gt;
| Grammar || 實 || 실로/참으로; (여기서는) 실제로 ~에 있다 || this_text_unit || 사실상·실제로 그러함을 강조하거나, ‘실제 존재함’을 나타낸다. || 實於原野는 “원야에 실제로 있었다/나타났다”로 장소 보어와 함께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Place || 原野 || 원야(들판) || general || 평야·들판, 궁궐 밖의 들. || 곡식의 발생 장소로 제시되어 ‘자연계에서의 상서’를 강조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同心並蒂 || 한마음으로 줄기를 함께한(쌍꽃의) || this_text_unit || 줄기(蒂)를 함께한 연꽃이 한 뿌리에서 나란히 핀 상서로운 형태(병체련). || 同心(한마음)이라는 덕목을 덧씌워 길상 의미를 강화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蓮 || 연(연꽃) || general || 연못에 피는 연꽃. || 본문에서는 ‘동심병체’라는 상서의 징조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開於 || ~에서 피다 || this_text_unit || 開(피다)에 장소 전치사 於가 붙어 ‘어디에서 피다’를 나타낸다. ||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는 “금지에서 피었다”로 문장 구조를 나누어 읽는다.&lt;br /&gt;
|-&lt;br /&gt;
| Place || 禁池 || 금지(궁중의 연못) || general || 궁궐 안(禁中)에 있는 연못. || 원야(궁 밖)와 대비되어, 상서가 궁중에도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臣 || 신(신하, 본인) || general || 임금 앞에서 자신을 낮춰 부르는 1인칭(신하의 자칭). || 서양인 화가라도 제발에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문체를 따라 臣으로 자칭한다.&lt;br /&gt;
|-&lt;br /&gt;
| Person || 郞世寧 || 낭세녕 || general || 청대 궁정에서 활동한 서양 출신 화가(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한자 이름. || 문장에서는 臣郞世寧으로, ‘신하 낭세녕’의 형식적 자칭으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拜觀 || 삼가 우러러 보다 || this_text_unit || 공손히(拜) 관람하다(觀)라는 겸양 표현. || 臣이 주어일 때 ‘황제의 물건/그림을 공손히 보았다’는 제발의 관례적 어법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下 || …하고 나서/…하여 || this_text_unit || 어떤 행위를 한 뒤에 이어지는 후행 행위를 이끄는 연결 표현. || 拜觀之下, 謹彙寫…는 “(삼가) 보고 난 뒤, (이에) 삼가 …을 그려”로 자연스럽게 잇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謹 || 삼가 || general || 겸손하고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공손 부사. || 謹彙寫, 恭畫 등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글·그림의 공손한 태도를 표시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彙寫 || 모아 그리다/취합하여 묘사하다 || this_text_unit || 여러 소재를 취합하여 한 폭에 그려 옮긴다는 뜻. || 瓶花(병에 꽂은 꽃)를 ‘길상 소재를 모아’ 정물로 구성했음을 말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瓶花 || 병화(병에 꽂은 꽃) || general || 병(花甁)에 꽂아 감상하는 꽃, 또는 이를 그린 정물 소재. || 본문의 곡식·연꽃 같은 길상 소재를 ‘병에 꽂은 정물’로 옮겨 그렸다는 핵심을 잡아야 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以 || …하여/…으로써 || this_text_unit || 앞의 행위를 수단·목적으로 삼아 뒤의 결과를 이끈다(…하여 …하다). || 以記祥應은 “(그림으로써) 상서로운 응함을 기록하기 위하여”로 목적 용법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記 || 기록하다 || general || 사실이나 일을 글·그림 등으로 남기다. || 회화 제작을 ‘기록 행위’로 정당화하는 제발의 전형적 논리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祥應 || 상응(상서로운 응험/징조의 나타남) || general || 길한 징조가 현실에서 응하여 나타나는 일. || 符瑞疊呈의 구체 사례(곡식·연꽃)를 총괄하는 말로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雍正元年 || 옹정 원년 || general || 청나라 옹정제 즉위 첫 해(1723). || 본문의 皇上御極元年과 주기(轉記)의 날짜가 서로 호응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九月十五日 || 9월 15일 || this_text_unit || 음력 9월 15일로, 제작·기록 시점을 적은 날짜. || 전각·제발에서 흔한 ‘년-월-일’ 표기이며, 뒤의 恭畫와 함께 연기(年記)를 이룬다.&lt;br /&gt;
|-&lt;br /&gt;
| Place || 海西 || 해서(서쪽 바다 너머, 서양) || this_text_unit || 중국에서 서양(바다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 || 海西臣郞世寧은 ‘서양 출신 신하 낭세녕’이라는 신분 표지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恭畫 || 삼가 그리다 || this_text_unit || 恭(삼가) + 畫(그리다)로, 황제에게 올리는 그림 제작을 겸손히 말하는 표현. || 전사(轉寫) 부분의 서명 관용구로, ‘봉명하여 그렸다’까지는 과도하게 덧붙이지 않도록 주의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B%82%AD%EC%84%B8%EB%85%95-%EC%B7%A8%EC%84%9C%EB%8F%84&amp;diff=2304</id>
		<title>S2601031:낭세녕-취서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B%82%AD%EC%84%B8%EB%85%95-%EC%B7%A8%EC%84%9C%EB%8F%84&amp;diff=2304"/>
		<updated>2026-04-10T02:17: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작품/작가==&lt;br /&gt;
* 작품 제목: 취서도&lt;br /&gt;
* 화가: 낭세녕&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039;&#039;&#039;취서도&#039;&#039;&#039;&lt;br /&gt;
&lt;br /&gt;
황상께서 즉위하신 원년에 상서로운 징조가 거듭 나타났습니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고 여러 이삭이 합쳐진 곡식이 들판에 가득 열매를 맺었고, 한 줄기에서 두 꽃대가 나란히 핀 연꽃이 궁궐 안 연못에서 피었습니다. 신 낭세녕이 삼가 살펴본 후에, 이 상서로운 감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병에 꽂은 꽃을 삼가 모아 그렸습니다.&lt;br /&gt;
&lt;br /&gt;
옹정 원년 9월 15일, 해서(海西)의 신하 낭세녕이 공손히 그리다.&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lt;br /&gt;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ArtWork || 聚瑞圖 || 취서도 || general || 상서로운 징조(瑞)를 모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화제(畫題). || 제발의 전체 내용이 ‘상서의 징조를 기록’하는 취지임을 드러내는 제목이다.&lt;br /&gt;
|-&lt;br /&gt;
| Person || 皇上 || 황상(황제) || this_text_unit || 이 글에서 말하는 임금, 즉 옹정제를 높여 부르는 칭호. || 뒤의 御極·元年과 결합해 ‘즉위 첫해의 황제’로 구체화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御極 || 어극(즉위하여 제위에 오름) || general || 황제가 천자(제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 즉 즉위. || 皇上御極元年은 ‘황제 즉위 원년’으로 한 덩어리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元年 || 원년(즉위 첫해) || general || 새 황제가 즉위한 뒤 첫 해를 이르는 말. || 옹정 원년(1723)이라는 시대 배경을 지정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符瑞 || 부서(상서로운 징조) || general || 하늘이 내리는 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표(祥瑞). || 본문의 곡식·연꽃의 ‘기이한 형태’가 모두 符瑞의 예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疊呈 || 거듭 나타나다/연이어 바치다 || this_text_unit || ‘잇달아 나타나다’의 뜻으로, 상서가 연달아 드러남을 말한다. || 呈을 ‘보이다/드러내다’로 잡아 “부서가 거듭 나타났다”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分岐合穎 || 가지가 갈라지되 이삭이 하나로 합한 || this_text_unit || 줄기나 가지가 둘로 갈라졌는데 이삭(穎)이 하나로 붙은 기이한 곡식. || 뒤의 之穀과 한 덩어리(“분기합영지곡”)로 보아 ‘상서로운 곡식’의 수식어이다.&lt;br /&gt;
|-&lt;br /&gt;
| Object || 穀 || 곡식 || general || 벼·기장 등 먹을 수 있는 곡류. || 여기서는 ‘상서의 징조로 보고된 특이한 곡식’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 || ~의 / ~하는 || this_text_unit || 앞말을 뒤의 명사에 이어 주는 관형 표지(…의, …하는). || 分岐合穎之穀, 同心並蒂之蓮에서 ‘…한 곡식/연꽃’으로 풀어야 매끄럽다.&lt;br /&gt;
|-&lt;br /&gt;
| Grammar || 實 || 실로/참으로; (여기서는) 실제로 ~에 있다 || this_text_unit || 사실상·실제로 그러함을 강조하거나, ‘실제 존재함’을 나타낸다. || 實於原野는 “원야에 실제로 있었다/나타났다”로 장소 보어와 함께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Place || 原野 || 원야(들판) || general || 평야·들판, 궁궐 밖의 들. || 곡식의 발생 장소로 제시되어 ‘자연계에서의 상서’를 강조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同心並蒂 || 한마음으로 줄기를 함께한(쌍꽃의) || this_text_unit || 줄기(蒂)를 함께한 연꽃이 한 뿌리에서 나란히 핀 상서로운 형태(병체련). || 同心(한마음)이라는 덕목을 덧씌워 길상 의미를 강화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蓮 || 연(연꽃) || general || 연못에 피는 연꽃. || 본문에서는 ‘동심병체’라는 상서의 징조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開於 || ~에서 피다 || this_text_unit || 開(피다)에 장소 전치사 於가 붙어 ‘어디에서 피다’를 나타낸다. ||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는 “금지에서 피었다”로 문장 구조를 나누어 읽는다.&lt;br /&gt;
|-&lt;br /&gt;
| Place || 禁池 || 금지(궁중의 연못) || general || 궁궐 안(禁中)에 있는 연못. || 원야(궁 밖)와 대비되어, 상서가 궁중에도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臣 || 신(신하, 본인) || general || 임금 앞에서 자신을 낮춰 부르는 1인칭(신하의 자칭). || 서양인 화가라도 제발에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문체를 따라 臣으로 자칭한다.&lt;br /&gt;
|-&lt;br /&gt;
| Person || 郞世寧 || 낭세녕 || general || 청대 궁정에서 활동한 서양 출신 화가(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한자 이름. || 문장에서는 臣郞世寧으로, ‘신하 낭세녕’의 형식적 자칭으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拜觀 || 삼가 우러러 보다 || this_text_unit || 공손히(拜) 관람하다(觀)라는 겸양 표현. || 臣이 주어일 때 ‘황제의 물건/그림을 공손히 보았다’는 제발의 관례적 어법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下 || …하고 나서/…하여 || this_text_unit || 어떤 행위를 한 뒤에 이어지는 후행 행위를 이끄는 연결 표현. || 拜觀之下, 謹彙寫…는 “(삼가) 보고 난 뒤, (이에) 삼가 …을 그려”로 자연스럽게 잇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謹 || 삼가 || general || 겸손하고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공손 부사. || 謹彙寫, 恭畫 등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글·그림의 공손한 태도를 표시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彙寫 || 모아 그리다/취합하여 묘사하다 || this_text_unit || 여러 소재를 취합하여 한 폭에 그려 옮긴다는 뜻. || 瓶花(병에 꽂은 꽃)를 ‘길상 소재를 모아’ 정물로 구성했음을 말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瓶花 || 병화(병에 꽂은 꽃) || general || 병(花甁)에 꽂아 감상하는 꽃, 또는 이를 그린 정물 소재. || 본문의 곡식·연꽃 같은 길상 소재를 ‘병에 꽂은 정물’로 옮겨 그렸다는 핵심을 잡아야 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以 || …하여/…으로써 || this_text_unit || 앞의 행위를 수단·목적으로 삼아 뒤의 결과를 이끈다(…하여 …하다). || 以記祥應은 “(그림으로써) 상서로운 응함을 기록하기 위하여”로 목적 용법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記 || 기록하다 || general || 사실이나 일을 글·그림 등으로 남기다. || 회화 제작을 ‘기록 행위’로 정당화하는 제발의 전형적 논리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祥應 || 상응(상서로운 응험/징조의 나타남) || general || 길한 징조가 현실에서 응하여 나타나는 일. || 符瑞疊呈의 구체 사례(곡식·연꽃)를 총괄하는 말로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雍正元年 || 옹정 원년 || general || 청나라 옹정제 즉위 첫 해(1723). || 본문의 皇上御極元年과 주기(轉記)의 날짜가 서로 호응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九月十五日 || 9월 15일 || this_text_unit || 음력 9월 15일로, 제작·기록 시점을 적은 날짜. || 전각·제발에서 흔한 ‘년-월-일’ 표기이며, 뒤의 恭畫와 함께 연기(年記)를 이룬다.&lt;br /&gt;
|-&lt;br /&gt;
| Place || 海西 || 해서(서쪽 바다 너머, 서양) || this_text_unit || 중국에서 서양(바다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 || 海西臣郞世寧은 ‘서양 출신 신하 낭세녕’이라는 신분 표지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恭畫 || 삼가 그리다 || this_text_unit || 恭(삼가) + 畫(그리다)로, 황제에게 올리는 그림 제작을 겸손히 말하는 표현. || 전사(轉寫) 부분의 서명 관용구로, ‘봉명하여 그렸다’까지는 과도하게 덧붙이지 않도록 주의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B%82%AD%EC%84%B8%EB%85%95-%EC%B7%A8%EC%84%9C%EB%8F%84&amp;diff=2301</id>
		<title>S2601031:낭세녕-취서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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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02:17: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작품/작가==&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작품 제목: 취서도&lt;br /&gt;
* 화가: 낭세녕&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039;&#039;&#039;취서도&#039;&#039;&#039;&lt;br /&gt;
&lt;br /&gt;
황상께서 즉위하신 원년에 상서로운 징조가 거듭 나타났습니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고 여러 이삭이 합쳐진 곡식이 들판에 가득 열매를 맺었고, 한 줄기에서 두 꽃대가 나란히 핀 연꽃이 궁궐 안 연못에서 피었습니다. 신 낭세녕이 삼가 살펴본 후에, 이 상서로운 감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병에 꽂은 꽃을 삼가 모아 그렸습니다.&lt;br /&gt;
&lt;br /&gt;
옹정 원년 9월 15일, 해서(海西)의 신하 낭세녕이 공손히 그리다.&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lt;br /&gt;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ArtWork || 聚瑞圖 || 취서도 || general || 상서로운 징조(瑞)를 모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화제(畫題). || 제발의 전체 내용이 ‘상서의 징조를 기록’하는 취지임을 드러내는 제목이다.&lt;br /&gt;
|-&lt;br /&gt;
| Person || 皇上 || 황상(황제) || this_text_unit || 이 글에서 말하는 임금, 즉 옹정제를 높여 부르는 칭호. || 뒤의 御極·元年과 결합해 ‘즉위 첫해의 황제’로 구체화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御極 || 어극(즉위하여 제위에 오름) || general || 황제가 천자(제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 즉 즉위. || 皇上御極元年은 ‘황제 즉위 원년’으로 한 덩어리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元年 || 원년(즉위 첫해) || general || 새 황제가 즉위한 뒤 첫 해를 이르는 말. || 옹정 원년(1723)이라는 시대 배경을 지정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符瑞 || 부서(상서로운 징조) || general || 하늘이 내리는 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표(祥瑞). || 본문의 곡식·연꽃의 ‘기이한 형태’가 모두 符瑞의 예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疊呈 || 거듭 나타나다/연이어 바치다 || this_text_unit || ‘잇달아 나타나다’의 뜻으로, 상서가 연달아 드러남을 말한다. || 呈을 ‘보이다/드러내다’로 잡아 “부서가 거듭 나타났다”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分岐合穎 || 가지가 갈라지되 이삭이 하나로 합한 || this_text_unit || 줄기나 가지가 둘로 갈라졌는데 이삭(穎)이 하나로 붙은 기이한 곡식. || 뒤의 之穀과 한 덩어리(“분기합영지곡”)로 보아 ‘상서로운 곡식’의 수식어이다.&lt;br /&gt;
|-&lt;br /&gt;
| Object || 穀 || 곡식 || general || 벼·기장 등 먹을 수 있는 곡류. || 여기서는 ‘상서의 징조로 보고된 특이한 곡식’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 || ~의 / ~하는 || this_text_unit || 앞말을 뒤의 명사에 이어 주는 관형 표지(…의, …하는). || 分岐合穎之穀, 同心並蒂之蓮에서 ‘…한 곡식/연꽃’으로 풀어야 매끄럽다.&lt;br /&gt;
|-&lt;br /&gt;
| Grammar || 實 || 실로/참으로; (여기서는) 실제로 ~에 있다 || this_text_unit || 사실상·실제로 그러함을 강조하거나, ‘실제 존재함’을 나타낸다. || 實於原野는 “원야에 실제로 있었다/나타났다”로 장소 보어와 함께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Place || 原野 || 원야(들판) || general || 평야·들판, 궁궐 밖의 들. || 곡식의 발생 장소로 제시되어 ‘자연계에서의 상서’를 강조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同心並蒂 || 한마음으로 줄기를 함께한(쌍꽃의) || this_text_unit || 줄기(蒂)를 함께한 연꽃이 한 뿌리에서 나란히 핀 상서로운 형태(병체련). || 同心(한마음)이라는 덕목을 덧씌워 길상 의미를 강화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蓮 || 연(연꽃) || general || 연못에 피는 연꽃. || 본문에서는 ‘동심병체’라는 상서의 징조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開於 || ~에서 피다 || this_text_unit || 開(피다)에 장소 전치사 於가 붙어 ‘어디에서 피다’를 나타낸다. ||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는 “금지에서 피었다”로 문장 구조를 나누어 읽는다.&lt;br /&gt;
|-&lt;br /&gt;
| Place || 禁池 || 금지(궁중의 연못) || general || 궁궐 안(禁中)에 있는 연못. || 원야(궁 밖)와 대비되어, 상서가 궁중에도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臣 || 신(신하, 본인) || general || 임금 앞에서 자신을 낮춰 부르는 1인칭(신하의 자칭). || 서양인 화가라도 제발에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문체를 따라 臣으로 자칭한다.&lt;br /&gt;
|-&lt;br /&gt;
| Person || 郞世寧 || 낭세녕 || general || 청대 궁정에서 활동한 서양 출신 화가(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한자 이름. || 문장에서는 臣郞世寧으로, ‘신하 낭세녕’의 형식적 자칭으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拜觀 || 삼가 우러러 보다 || this_text_unit || 공손히(拜) 관람하다(觀)라는 겸양 표현. || 臣이 주어일 때 ‘황제의 물건/그림을 공손히 보았다’는 제발의 관례적 어법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下 || …하고 나서/…하여 || this_text_unit || 어떤 행위를 한 뒤에 이어지는 후행 행위를 이끄는 연결 표현. || 拜觀之下, 謹彙寫…는 “(삼가) 보고 난 뒤, (이에) 삼가 …을 그려”로 자연스럽게 잇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謹 || 삼가 || general || 겸손하고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공손 부사. || 謹彙寫, 恭畫 등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글·그림의 공손한 태도를 표시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彙寫 || 모아 그리다/취합하여 묘사하다 || this_text_unit || 여러 소재를 취합하여 한 폭에 그려 옮긴다는 뜻. || 瓶花(병에 꽂은 꽃)를 ‘길상 소재를 모아’ 정물로 구성했음을 말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瓶花 || 병화(병에 꽂은 꽃) || general || 병(花甁)에 꽂아 감상하는 꽃, 또는 이를 그린 정물 소재. || 본문의 곡식·연꽃 같은 길상 소재를 ‘병에 꽂은 정물’로 옮겨 그렸다는 핵심을 잡아야 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以 || …하여/…으로써 || this_text_unit || 앞의 행위를 수단·목적으로 삼아 뒤의 결과를 이끈다(…하여 …하다). || 以記祥應은 “(그림으로써) 상서로운 응함을 기록하기 위하여”로 목적 용법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記 || 기록하다 || general || 사실이나 일을 글·그림 등으로 남기다. || 회화 제작을 ‘기록 행위’로 정당화하는 제발의 전형적 논리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祥應 || 상응(상서로운 응험/징조의 나타남) || general || 길한 징조가 현실에서 응하여 나타나는 일. || 符瑞疊呈의 구체 사례(곡식·연꽃)를 총괄하는 말로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雍正元年 || 옹정 원년 || general || 청나라 옹정제 즉위 첫 해(1723). || 본문의 皇上御極元年과 주기(轉記)의 날짜가 서로 호응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九月十五日 || 9월 15일 || this_text_unit || 음력 9월 15일로, 제작·기록 시점을 적은 날짜. || 전각·제발에서 흔한 ‘년-월-일’ 표기이며, 뒤의 恭畫와 함께 연기(年記)를 이룬다.&lt;br /&gt;
|-&lt;br /&gt;
| Place || 海西 || 해서(서쪽 바다 너머, 서양) || this_text_unit || 중국에서 서양(바다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 || 海西臣郞世寧은 ‘서양 출신 신하 낭세녕’이라는 신분 표지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恭畫 || 삼가 그리다 || this_text_unit || 恭(삼가) + 畫(그리다)로, 황제에게 올리는 그림 제작을 겸손히 말하는 표현. || 전사(轉寫) 부분의 서명 관용구로, ‘봉명하여 그렸다’까지는 과도하게 덧붙이지 않도록 주의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B%82%AD%EC%84%B8%EB%85%95-%EC%B7%A8%EC%84%9C%EB%8F%84&amp;diff=2299</id>
		<title>S2601031:낭세녕-취서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kstoryhub.visualasia.com/classics/wiki/index.php?title=S2601031:%EB%82%AD%EC%84%B8%EB%85%95-%EC%B7%A8%EC%84%9C%EB%8F%84&amp;diff=2299"/>
		<updated>2026-04-10T02:17: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작품/작가==&lt;br /&gt;
== 작품/작가 ==&lt;br /&gt;
* 작품 제목: 취서도&lt;br /&gt;
* 화가: 낭셰녕&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039;&#039;&#039;취서도&#039;&#039;&#039;&lt;br /&gt;
&lt;br /&gt;
황상께서 즉위하신 원년에 상서로운 징조가 거듭 나타났습니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고 여러 이삭이 합쳐진 곡식이 들판에 가득 열매를 맺었고, 한 줄기에서 두 꽃대가 나란히 핀 연꽃이 궁궐 안 연못에서 피었습니다. 신 낭세녕이 삼가 살펴본 후에, 이 상서로운 감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병에 꽂은 꽃을 삼가 모아 그렸습니다.&lt;br /&gt;
&lt;br /&gt;
옹정 원년 9월 15일, 해서(海西)의 신하 낭세녕이 공손히 그리다.&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lt;br /&gt;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ArtWork || 聚瑞圖 || 취서도 || general || 상서로운 징조(瑞)를 모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화제(畫題). || 제발의 전체 내용이 ‘상서의 징조를 기록’하는 취지임을 드러내는 제목이다.&lt;br /&gt;
|-&lt;br /&gt;
| Person || 皇上 || 황상(황제) || this_text_unit || 이 글에서 말하는 임금, 즉 옹정제를 높여 부르는 칭호. || 뒤의 御極·元年과 결합해 ‘즉위 첫해의 황제’로 구체화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御極 || 어극(즉위하여 제위에 오름) || general || 황제가 천자(제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 즉 즉위. || 皇上御極元年은 ‘황제 즉위 원년’으로 한 덩어리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元年 || 원년(즉위 첫해) || general || 새 황제가 즉위한 뒤 첫 해를 이르는 말. || 옹정 원년(1723)이라는 시대 배경을 지정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符瑞 || 부서(상서로운 징조) || general || 하늘이 내리는 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표(祥瑞). || 본문의 곡식·연꽃의 ‘기이한 형태’가 모두 符瑞의 예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疊呈 || 거듭 나타나다/연이어 바치다 || this_text_unit || ‘잇달아 나타나다’의 뜻으로, 상서가 연달아 드러남을 말한다. || 呈을 ‘보이다/드러내다’로 잡아 “부서가 거듭 나타났다”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分岐合穎 || 가지가 갈라지되 이삭이 하나로 합한 || this_text_unit || 줄기나 가지가 둘로 갈라졌는데 이삭(穎)이 하나로 붙은 기이한 곡식. || 뒤의 之穀과 한 덩어리(“분기합영지곡”)로 보아 ‘상서로운 곡식’의 수식어이다.&lt;br /&gt;
|-&lt;br /&gt;
| Object || 穀 || 곡식 || general || 벼·기장 등 먹을 수 있는 곡류. || 여기서는 ‘상서의 징조로 보고된 특이한 곡식’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 || ~의 / ~하는 || this_text_unit || 앞말을 뒤의 명사에 이어 주는 관형 표지(…의, …하는). || 分岐合穎之穀, 同心並蒂之蓮에서 ‘…한 곡식/연꽃’으로 풀어야 매끄럽다.&lt;br /&gt;
|-&lt;br /&gt;
| Grammar || 實 || 실로/참으로; (여기서는) 실제로 ~에 있다 || this_text_unit || 사실상·실제로 그러함을 강조하거나, ‘실제 존재함’을 나타낸다. || 實於原野는 “원야에 실제로 있었다/나타났다”로 장소 보어와 함께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Place || 原野 || 원야(들판) || general || 평야·들판, 궁궐 밖의 들. || 곡식의 발생 장소로 제시되어 ‘자연계에서의 상서’를 강조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同心並蒂 || 한마음으로 줄기를 함께한(쌍꽃의) || this_text_unit || 줄기(蒂)를 함께한 연꽃이 한 뿌리에서 나란히 핀 상서로운 형태(병체련). || 同心(한마음)이라는 덕목을 덧씌워 길상 의미를 강화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蓮 || 연(연꽃) || general || 연못에 피는 연꽃. || 본문에서는 ‘동심병체’라는 상서의 징조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開於 || ~에서 피다 || this_text_unit || 開(피다)에 장소 전치사 於가 붙어 ‘어디에서 피다’를 나타낸다. ||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는 “금지에서 피었다”로 문장 구조를 나누어 읽는다.&lt;br /&gt;
|-&lt;br /&gt;
| Place || 禁池 || 금지(궁중의 연못) || general || 궁궐 안(禁中)에 있는 연못. || 원야(궁 밖)와 대비되어, 상서가 궁중에도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臣 || 신(신하, 본인) || general || 임금 앞에서 자신을 낮춰 부르는 1인칭(신하의 자칭). || 서양인 화가라도 제발에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문체를 따라 臣으로 자칭한다.&lt;br /&gt;
|-&lt;br /&gt;
| Person || 郞世寧 || 낭세녕 || general || 청대 궁정에서 활동한 서양 출신 화가(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한자 이름. || 문장에서는 臣郞世寧으로, ‘신하 낭세녕’의 형식적 자칭으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拜觀 || 삼가 우러러 보다 || this_text_unit || 공손히(拜) 관람하다(觀)라는 겸양 표현. || 臣이 주어일 때 ‘황제의 물건/그림을 공손히 보았다’는 제발의 관례적 어법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下 || …하고 나서/…하여 || this_text_unit || 어떤 행위를 한 뒤에 이어지는 후행 행위를 이끄는 연결 표현. || 拜觀之下, 謹彙寫…는 “(삼가) 보고 난 뒤, (이에) 삼가 …을 그려”로 자연스럽게 잇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謹 || 삼가 || general || 겸손하고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공손 부사. || 謹彙寫, 恭畫 등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글·그림의 공손한 태도를 표시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彙寫 || 모아 그리다/취합하여 묘사하다 || this_text_unit || 여러 소재를 취합하여 한 폭에 그려 옮긴다는 뜻. || 瓶花(병에 꽂은 꽃)를 ‘길상 소재를 모아’ 정물로 구성했음을 말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瓶花 || 병화(병에 꽂은 꽃) || general || 병(花甁)에 꽂아 감상하는 꽃, 또는 이를 그린 정물 소재. || 본문의 곡식·연꽃 같은 길상 소재를 ‘병에 꽂은 정물’로 옮겨 그렸다는 핵심을 잡아야 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以 || …하여/…으로써 || this_text_unit || 앞의 행위를 수단·목적으로 삼아 뒤의 결과를 이끈다(…하여 …하다). || 以記祥應은 “(그림으로써) 상서로운 응함을 기록하기 위하여”로 목적 용법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記 || 기록하다 || general || 사실이나 일을 글·그림 등으로 남기다. || 회화 제작을 ‘기록 행위’로 정당화하는 제발의 전형적 논리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祥應 || 상응(상서로운 응험/징조의 나타남) || general || 길한 징조가 현실에서 응하여 나타나는 일. || 符瑞疊呈의 구체 사례(곡식·연꽃)를 총괄하는 말로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雍正元年 || 옹정 원년 || general || 청나라 옹정제 즉위 첫 해(1723). || 본문의 皇上御極元年과 주기(轉記)의 날짜가 서로 호응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九月十五日 || 9월 15일 || this_text_unit || 음력 9월 15일로, 제작·기록 시점을 적은 날짜. || 전각·제발에서 흔한 ‘년-월-일’ 표기이며, 뒤의 恭畫와 함께 연기(年記)를 이룬다.&lt;br /&gt;
|-&lt;br /&gt;
| Place || 海西 || 해서(서쪽 바다 너머, 서양) || this_text_unit || 중국에서 서양(바다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 || 海西臣郞世寧은 ‘서양 출신 신하 낭세녕’이라는 신분 표지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恭畫 || 삼가 그리다 || this_text_unit || 恭(삼가) + 畫(그리다)로, 황제에게 올리는 그림 제작을 겸손히 말하는 표현. || 전사(轉寫) 부분의 서명 관용구로, ‘봉명하여 그렸다’까지는 과도하게 덧붙이지 않도록 주의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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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낭세녕-취서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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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02:14: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작품/작가==&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039;&#039;&#039;취서도&#039;&#039;&#039;&lt;br /&gt;
&lt;br /&gt;
황상께서 즉위하신 원년에 상서로운 징조가 거듭 나타났습니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고 여러 이삭이 합쳐진 곡식이 들판에 가득 열매를 맺었고, 한 줄기에서 두 꽃대가 나란히 핀 연꽃이 궁궐 안 연못에서 피었습니다. 신 낭세녕이 삼가 살펴본 후에, 이 상서로운 감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병에 꽂은 꽃을 삼가 모아 그렸습니다.&lt;br /&gt;
&lt;br /&gt;
옹정 원년 9월 15일, 해서(海西)의 신하 낭세녕이 공손히 그리다.&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lt;br /&gt;
! type !! hanmun !! korean !! scope !! definition !! sense_note&lt;br /&gt;
|-&lt;br /&gt;
| ArtWork || 聚瑞圖 || 취서도 || general || 상서로운 징조(瑞)를 모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화제(畫題). || 제발의 전체 내용이 ‘상서의 징조를 기록’하는 취지임을 드러내는 제목이다.&lt;br /&gt;
|-&lt;br /&gt;
| Person || 皇上 || 황상(황제) || this_text_unit || 이 글에서 말하는 임금, 즉 옹정제를 높여 부르는 칭호. || 뒤의 御極·元年과 결합해 ‘즉위 첫해의 황제’로 구체화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御極 || 어극(즉위하여 제위에 오름) || general || 황제가 천자(제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 즉 즉위. || 皇上御極元年은 ‘황제 즉위 원년’으로 한 덩어리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元年 || 원년(즉위 첫해) || general || 새 황제가 즉위한 뒤 첫 해를 이르는 말. || 옹정 원년(1723)이라는 시대 배경을 지정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符瑞 || 부서(상서로운 징조) || general || 하늘이 내리는 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표(祥瑞). || 본문의 곡식·연꽃의 ‘기이한 형태’가 모두 符瑞의 예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疊呈 || 거듭 나타나다/연이어 바치다 || this_text_unit || ‘잇달아 나타나다’의 뜻으로, 상서가 연달아 드러남을 말한다. || 呈을 ‘보이다/드러내다’로 잡아 “부서가 거듭 나타났다”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分岐合穎 || 가지가 갈라지되 이삭이 하나로 합한 || this_text_unit || 줄기나 가지가 둘로 갈라졌는데 이삭(穎)이 하나로 붙은 기이한 곡식. || 뒤의 之穀과 한 덩어리(“분기합영지곡”)로 보아 ‘상서로운 곡식’의 수식어이다.&lt;br /&gt;
|-&lt;br /&gt;
| Object || 穀 || 곡식 || general || 벼·기장 등 먹을 수 있는 곡류. || 여기서는 ‘상서의 징조로 보고된 특이한 곡식’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 || ~의 / ~하는 || this_text_unit || 앞말을 뒤의 명사에 이어 주는 관형 표지(…의, …하는). || 分岐合穎之穀, 同心並蒂之蓮에서 ‘…한 곡식/연꽃’으로 풀어야 매끄럽다.&lt;br /&gt;
|-&lt;br /&gt;
| Grammar || 實 || 실로/참으로; (여기서는) 실제로 ~에 있다 || this_text_unit || 사실상·실제로 그러함을 강조하거나, ‘실제 존재함’을 나타낸다. || 實於原野는 “원야에 실제로 있었다/나타났다”로 장소 보어와 함께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Place || 原野 || 원야(들판) || general || 평야·들판, 궁궐 밖의 들. || 곡식의 발생 장소로 제시되어 ‘자연계에서의 상서’를 강조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同心並蒂 || 한마음으로 줄기를 함께한(쌍꽃의) || this_text_unit || 줄기(蒂)를 함께한 연꽃이 한 뿌리에서 나란히 핀 상서로운 형태(병체련). || 同心(한마음)이라는 덕목을 덧씌워 길상 의미를 강화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蓮 || 연(연꽃) || general || 연못에 피는 연꽃. || 본문에서는 ‘동심병체’라는 상서의 징조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開於 || ~에서 피다 || this_text_unit || 開(피다)에 장소 전치사 於가 붙어 ‘어디에서 피다’를 나타낸다. ||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는 “금지에서 피었다”로 문장 구조를 나누어 읽는다.&lt;br /&gt;
|-&lt;br /&gt;
| Place || 禁池 || 금지(궁중의 연못) || general || 궁궐 안(禁中)에 있는 연못. || 원야(궁 밖)와 대비되어, 상서가 궁중에도 나타났음을 보여 준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臣 || 신(신하, 본인) || general || 임금 앞에서 자신을 낮춰 부르는 1인칭(신하의 자칭). || 서양인 화가라도 제발에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문체를 따라 臣으로 자칭한다.&lt;br /&gt;
|-&lt;br /&gt;
| Person || 郞世寧 || 낭세녕 || general || 청대 궁정에서 활동한 서양 출신 화가(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한자 이름. || 문장에서는 臣郞世寧으로, ‘신하 낭세녕’의 형식적 자칭으로 제시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拜觀 || 삼가 우러러 보다 || this_text_unit || 공손히(拜) 관람하다(觀)라는 겸양 표현. || 臣이 주어일 때 ‘황제의 물건/그림을 공손히 보았다’는 제발의 관례적 어법이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之下 || …하고 나서/…하여 || this_text_unit || 어떤 행위를 한 뒤에 이어지는 후행 행위를 이끄는 연결 표현. || 拜觀之下, 謹彙寫…는 “(삼가) 보고 난 뒤, (이에) 삼가 …을 그려”로 자연스럽게 잇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謹 || 삼가 || general || 겸손하고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공손 부사. || 謹彙寫, 恭畫 등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글·그림의 공손한 태도를 표시한다.&lt;br /&gt;
|-&lt;br /&gt;
| Concept || 彙寫 || 모아 그리다/취합하여 묘사하다 || this_text_unit || 여러 소재를 취합하여 한 폭에 그려 옮긴다는 뜻. || 瓶花(병에 꽂은 꽃)를 ‘길상 소재를 모아’ 정물로 구성했음을 말한다.&lt;br /&gt;
|-&lt;br /&gt;
| Object || 瓶花 || 병화(병에 꽂은 꽃) || general || 병(花甁)에 꽂아 감상하는 꽃, 또는 이를 그린 정물 소재. || 본문의 곡식·연꽃 같은 길상 소재를 ‘병에 꽂은 정물’로 옮겨 그렸다는 핵심을 잡아야 한다.&lt;br /&gt;
|-&lt;br /&gt;
| Grammar || 以 || …하여/…으로써 || this_text_unit || 앞의 행위를 수단·목적으로 삼아 뒤의 결과를 이끈다(…하여 …하다). || 以記祥應은 “(그림으로써) 상서로운 응함을 기록하기 위하여”로 목적 용법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記 || 기록하다 || general || 사실이나 일을 글·그림 등으로 남기다. || 회화 제작을 ‘기록 행위’로 정당화하는 제발의 전형적 논리이다.&lt;br /&gt;
|-&lt;br /&gt;
| Concept || 祥應 || 상응(상서로운 응험/징조의 나타남) || general || 길한 징조가 현실에서 응하여 나타나는 일. || 符瑞疊呈의 구체 사례(곡식·연꽃)를 총괄하는 말로 이해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雍正元年 || 옹정 원년 || general || 청나라 옹정제 즉위 첫 해(1723). || 본문의 皇上御極元年과 주기(轉記)의 날짜가 서로 호응한다.&lt;br /&gt;
|-&lt;br /&gt;
| Timespan || 九月十五日 || 9월 15일 || this_text_unit || 음력 9월 15일로, 제작·기록 시점을 적은 날짜. || 전각·제발에서 흔한 ‘년-월-일’ 표기이며, 뒤의 恭畫와 함께 연기(年記)를 이룬다.&lt;br /&gt;
|-&lt;br /&gt;
| Place || 海西 || 해서(서쪽 바다 너머, 서양) || this_text_unit || 중국에서 서양(바다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 || 海西臣郞世寧은 ‘서양 출신 신하 낭세녕’이라는 신분 표지로 읽는다.&lt;br /&gt;
|-&lt;br /&gt;
| Grammar || 恭畫 || 삼가 그리다 || this_text_unit || 恭(삼가) + 畫(그리다)로, 황제에게 올리는 그림 제작을 겸손히 말하는 표현. || 전사(轉寫) 부분의 서명 관용구로, ‘봉명하여 그렸다’까지는 과도하게 덧붙이지 않도록 주의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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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2601031:낭세녕-취서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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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0T02:08: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lt;/p&gt;
&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lt;br /&gt;
==작품/작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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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039;&#039;&#039;취서도&#039;&#039;&#039;&lt;br /&gt;
&lt;br /&gt;
황상께서 즉위하신 원년에 상서로운 징조가 거듭 나타났습니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고 여러 이삭이 합쳐진 곡식이 들판에 가득 열매를 맺었고, 한 줄기에서 두 꽃대가 나란히 핀 연꽃이 궁궐 안 연못에서 피었습니다. 신 낭세녕이 삼가 살펴본 후에, 이 상서로운 감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병에 꽂은 꽃을 삼가 모아 그렸습니다.&lt;br /&gt;
&lt;br /&gt;
옹정 원년 9월 15일, 해서(海西)의 신하 낭세녕이 공손히 그리다.&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분류:2601B]]&lt;/div&gt;</summary>
		<author><name>S2601031</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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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파일: 낭세녕-취서도.jpg | right | 300px]]&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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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작가==&lt;br /&gt;
&lt;br /&gt;
==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amp;lt;font size=5&amp;gt;&lt;br /&gt;
&lt;br /&gt;
&#039;&#039;&#039;聚瑞圖&#039;&#039;&#039;&lt;br /&gt;
&lt;br /&gt;
皇上御極元年, 符瑞疊呈. 分岐合穎之穀, 實於原野. 同心並蒂之蓮, 開於禁池. 臣郞世寧拜觀之下, 謹彙寫瓶花, 以記祥應.&lt;br /&gt;
&lt;br /&gt;
雍正元年九月十五日, 海西臣郞世寧恭畫.&lt;br /&gt;
&lt;br /&gt;
&amp;lt;/font&amp;gt;&lt;br /&gt;
&lt;br /&gt;
===한국어 번역===&lt;br /&gt;
&lt;br /&gt;
&lt;br /&gt;
===용어 해설===&lt;br /&gt;
&lt;br /&gt;
&lt;br /&gt;
===번역 노트===&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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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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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S2601031: 새 문서:  300px  ==작품/작가==  ==제발(題跋)== ===원문===   ===한국어 번역===   ===용어 해설===   ===번역 노트===   분류:AI 고전번역학 분류:AI 서화제발 분류:2601B&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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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작품/작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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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題跋)==&lt;br /&gt;
===원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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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AI 고전번역학]]&lt;br /&gt;
[[분류:AI 서화제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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