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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id="서울_관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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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관성묘</korean>
<hanja>關聖廟</hanja>
<english>Gwanseongmyo Shrine</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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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부군당</korean>
<hanja>府君堂</hanja>
<english>Bugundang</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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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30길 2</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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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묘(關聖廟)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關羽)를 신격으로 받드는 묘사(廟祠)이다. 서울특별시 중구에 소재하며,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 임진·정유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이 울산성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이곳에서 치료하여 완치된 것이 관우의 현영(顯英)에 의한 것으로 믿어 관성묘를 세웠다는 설이다. 둘째, 고종의 비(妃)인 엄귀비(嚴貴妃)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설이다.
건물은 맞배지붕에 한식기와를 얹었으며 바깥문은 6짝의 문이 있다. 사당 정면에는 18세기 화풍으로 그려진 관우 부부상이 좌우로 걸려 있고, 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무인상, 오른쪽에는 문인상이 있으며, 왼쪽 벽에는 장군상, 오른쪽 벽에는 산신령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묘의 제일(祭日)은 음력 정월 초하루, 5월 13일, 6월 24일, 10월 19일 등 연 4회이며, 제의(祭儀)는 축관(祝官)이 축문을 읽고 4배하는 방식으로 거행된다. 중국의 위인이 한국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어 지속적으로 신봉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의의가 크다.
관성묘는 서울 동묘(東廟, 동관왕묘)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무속과 도교가 혼합된 민간신앙의 공간으로서 독자적인 종교·민속사적 가치를 지닌다. 부군당(府君堂)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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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id="서울_국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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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국사당</korean>
<hanja>國師堂</hanja>
<english>Guksadang Shrine (Inwangsan)</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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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목멱신사</korean>
<hanja>木覓神祠</hanja>
<english>Mongmyeok Shrine</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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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 (무악동, 인왕산 선바위 아래)</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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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tude>37.5788</latitude>
<longitude>126.9595</longitude>
<altitude>약 135m (인왕산 기슭)</al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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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1396</year>
<reign_year>태조 5년</reign_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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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왕산 국사당(仁旺山 國師堂)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 기슭 선바위 아래에 위치한 무속신앙의 신당(神堂)이다. 1973년 7월 16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8호(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 당은 남산(木覓山) 꼭대기, 현재 팔각정이 위치한 자리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1396)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태종 4년(1404)에 호국의 신으로 삼아 국가 공식 기우제(祈雨祭)와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 조선시대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도 불렀다.
1925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립하면서 국사당이 신사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문제 삼아 이전을 강요하였다. 이에 무속인들이 건물을 해체하여 현재의 인왕산 선바위 아래 자리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인왕산이 이전 장소로 선택된 것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한옥 구조로, 양끝 2칸은 이전 후 새로 지은 것이다. 내부 3면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별도 지정된 무신도(巫神圖)가 걸려 있으며, 그 솜씨가 타 무신도에 비해 뛰어나 예술사적 가치도 높이 평가된다. 내부 대들보가 아치형으로 된 것이 독특한 구조적 특징이며, 금단청(金丹靑)이 남아 있는 보기 드문 건물 중 하나이다.
당(堂)에는 태조 이성계, 무학대사, 고려 공민왕, 나옹선사 등 여러 신상과 무신도가 봉안되어 있다. 국사당이라는 명칭은 무학대사(국사, 國師)를 모시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지금도 내림굿·치병굿·재수굿·진오기굿 등 무속 의례가 활발히 행해지고 있으며, 서울 무속 신앙 연구의 중요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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