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01002:김홍도-안릉신영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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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Concept || 家君 || 가군 || general || 자신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 ||<del>글쓴이가 자신의 아버지인 안릉 부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del><br/>글쓴이가 자신의 아버지인 신사운(申思運: 1751-1801) 즉 안릉(안주) 목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 수정 || Concept || 家君 || 가군 || general || 자신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 ||<del>글쓴이가 자신의 아버지인 안릉 부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del><br/>글쓴이가 자신의 아버지인 신사운(申思運: 1721-1801) 즉 안릉(안주) 목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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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Place || 陵安 || 안릉 || this_text_unit ||  <del>'지명. 함경도 영흥(永興)의 옛 이름이다.</del><br/>지명. 평안남도 안주시(安州市)의 옛 이름이다. || 글쓴이의 아버지가 수령으로 부임한 장소이다.
| 수정 || Place || 陵安 || 안릉 || this_text_unit ||  <del>'지명. 함경도 영흥(永興)의 옛 이름이다.</del><br/>지명. 평안남도 안주시(安州市)의 옛 이름이다. || 글쓴이의 아버지가 수령으로 부임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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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Concept || 小子 || 소자 || general || 아들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1인칭 대명사. || <del>이 글을 쓴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del><br/>이 글을 쓴 작가 자신 즉 신사운(申思運: 1751-1801)의 아들 신제(申堤, 1759-미상)를 가리키는 말이다.
| 수정 || Concept || 小子 || 소자 || general || 아들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1인칭 대명사. || <del>이 글을 쓴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del><br/>이 글을 쓴 작가 자신 즉 신사운(申思運: 1721-1801)의 아들 신제(申堤, 1759-미상)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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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Concept || 萱堂 || 훤당 || general || <del>어머니 또는 어머니가 거처하는 곳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원추리(萱草)가 어머니를 상징하는 데서 유래했다.</del><br/>어머니 또는 어머니가 거처하는 곳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시경(詩經)》 소남(召南) 채빈(采蘋)에,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주부(主婦)의 훌륭한 행실을 노래하면서 “남쪽 산골 시내에서 마름 풀을 뜯노매라.[于以采蘋 南澗之濱]”라고 하였다. 또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어디서 원추리 하나 얻어, 집 뒤켠에 심어 볼꼬.[焉得萱草 言樹之背]”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친의 거처를 북당(北堂) 혹은 훤당(萱堂)이라고 하게 되었다. || 시에서 봄의 정경과 화목한 기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 수정 || Concept || 萱堂 || 훤당 || general || <del>어머니 또는 어머니가 거처하는 곳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원추리(萱草)가 어머니를 상징하는 데서 유래했다.</del><br/>어머니 또는 어머니가 거처하는 곳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시경(詩經)》 소남(召南) 채빈(采蘋)에,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주부(主婦)의 훌륭한 행실을 노래하면서 “남쪽 산골 시내에서 마름 풀을 뜯노매라.[于以采蘋 南澗之濱]”라고 하였다. 또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어디서 원추리 하나 얻어, 집 뒤켠에 심어 볼꼬.[焉得萱草 言樹之背]”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친의 거처를 북당(北堂) 혹은 훤당(萱堂)이라고 하게 되었다. || 시에서 봄의 정경과 화목한 기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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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Person || 樂山軒 || 낙산헌 || this_text_unit || <del>호(號). 이 글을 쓴 강인(姜寅)의 호로 추정된다.</del><br/>이 글을 쓴 신제(申堤, 1759-미상)의 호로 추정된다.  || <del>호(號). 강인은 표암 강세황의 아들로, 이 글의 작가이다.</del><br/>신제는 신사운(申思運: 1751-1801)의 아들로, 이 제발을 쓴 작자이다. 임헌회(任憲晦, 1811-1876)가 지은 판서신공행장(判書申公行狀)을 보면 신사운의 호가 낙운(樂耘)이라고 하였는데 신제 또한 그의 아버지의 첫 글자 호를 따서 낙산헌(樂山軒)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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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5일 (금) 02:27 기준 최신판


S2601002:김홍도-안릉신영도.xml

작품/작가

  • 제목: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 작품 소개: 긴 두루마리에 그려진 이 그림은 새로 부임하는 관리의 행차를 그린 행렬도이다. 이러한 그림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제작된 의궤도(특별한 의식의 절차를 기록한 의궤에 실린 그림)에는 이러한 행렬 그림이 반드시 그려졌다. 흔히 반차도(班次圖)라고 불린 이 그림은 조선시대 기록화의 한 부분으로 중시된다.이 그림은 1785년 낙산헌(樂山軒)의 아버지(申思運 추정: 1721-1801)가 안릉(安陵)의 목민관(牧民官)으로 부임했을 때, 그 행렬의 성대함을 보고 낙산헌이 화원 김홍도에게 그리게 했다는 글이 적혀 있다. 각종 깃발을 든 기수 마흔 여덟 명과 군뢰(軍牢), 중군(中軍) 등 병졸, 악대, 병방(兵房)과 집사(執事), 아전과 노비, 악사와 기생, 가마를 앞세운 아녀자들의 행렬이 앞서 나가고, 이어 열여덟 명의 수종원이 받드는 쌍가마[雙轎]가 등장하여 행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뒤에는 수행하는 인원과 군뢰가 따르고 좌거(坐車) 뒤에는 책실(冊室), 책객(冊客), 중방(中房), 기생, 그리고 좌수(坐首)와 예감(禮監) 일행이 이어진다. 인물 배치와 행렬의 흐름에 능숙한 변화와 유연함이 있어 김홍도가 그렸다는 기록을 수긍하게 하지만, 세부 필치에서는 약간씩의 차이가 발견되어 여러 화원 화가들이 함께 그렸을 가능성이 추측되기도 한다.
  • 화가: 김홍도(金弘道, 1745-미상)
  • 제발 저자: 신제(申堤, 1759-미상)
  • 시대: 18세기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제발(題跋)

원문

乙巳春, 家君作宰莅於安陵. 其秋, 小子

隨而往焉, 獲覩威儀之盛. 丙午秋, 命畵工

金士能模其班次, 盡旣成, 敍其事以題之.

春草萱堂綠, 和氣欝葱葱. 十里銀波路,

三秋白帝宮. 靑刀雙偃月, 皁蓋數翻風.

棨戟軍容肅, 旌旗陣面雄. 轎馬障泥碧,

宮妓挾袖紅. 揮筆花牋上, 蹟留一帖中.

戊申暮春節, 樂山軒 題.

번역 초안(Gemini2.5pro)

을사년(1785) 봄, 아버지께서 수령이 되어 안릉에 부임하셨다. 그해 가을, 소자가 따라 그곳에 가서 위엄 있는 행렬의 성대함을 볼 수 있었다. 병오년(1786) 가을, 화공 김사능(김홍도)에게 명하여 그 행렬의 차례를 그리게 하니, 그림이 완성되자 그 일을 서술하여 여기에 제발을 쓴다.

봄 풀은 훤당에 푸르고, 온화한 기운이 무성하구나. 십 리 길은 은빛 물결 같고, 가을은 백제의 궁궐 같네. 푸른 칼 두 자루는 언월도요, 검은 덮개는 여러 번 바람에 나부끼네. 계극을 든 군대의 모습은 엄숙하고, 깃발이 늘어선 진영의 앞모습은 웅장하구나. 가마와 말의 장니는 푸르고, 궁기의 소매는 붉구나. 화전 위에 붓을 휘두르니, 그 자취가 한 첩의 그림 속에 남았네.

무신년(1788) 늦은 봄에 낙산헌이 쓰다.

glossary review

type hanmun korean scope definition sense_note
수정 Concept 家君 가군 general 자신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 글쓴이가 자신의 아버지인 안릉 부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글쓴이가 자신의 아버지인 신사운(申思運: 1721-1801) 즉 안릉(안주) 목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수정 Place 陵安 안릉 this_text_unit '지명. 함경도 영흥(永興)의 옛 이름이다.
지명. 평안남도 안주시(安州市)의 옛 이름이다.
글쓴이의 아버지가 수령으로 부임한 장소이다.
수정 Concept 小子 소자 general 아들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1인칭 대명사. 이 글을 쓴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글을 쓴 작가 자신 즉 신사운(申思運: 1721-1801)의 아들 신제(申堤, 1759-미상)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정 Concept 萱堂 훤당 general 어머니 또는 어머니가 거처하는 곳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원추리(萱草)가 어머니를 상징하는 데서 유래했다.
어머니 또는 어머니가 거처하는 곳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시경(詩經)》 소남(召南) 채빈(采蘋)에,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주부(主婦)의 훌륭한 행실을 노래하면서 “남쪽 산골 시내에서 마름 풀을 뜯노매라.[于以采蘋 南澗之濱]”라고 하였다. 또 위풍(衛風) 백혜(伯兮)에 “어디서 원추리 하나 얻어, 집 뒤켠에 심어 볼꼬.[焉得萱草 言樹之背]”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친의 거처를 북당(北堂) 혹은 훤당(萱堂)이라고 하게 되었다.
시에서 봄의 정경과 화목한 기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수정 Person 樂山軒 낙산헌 this_text_unit 호(號). 이 글을 쓴 강인(姜寅)의 호로 추정된다.
이 글을 쓴 신제(申堤, 1759-미상)의 호로 추정된다.
호(號). 강인은 표암 강세황의 아들로, 이 글의 작가이다.
신제는 신사운(申思運: 1721-1801)의 아들로, 이 제발을 쓴 작자이다. 임헌회(任憲晦, 1811-1876)가 지은 판서신공행장(判書申公行狀)을 보면 신사운의 호가 낙운(樂耘)이라고 하였는데 신제 또한 그의 아버지의 첫 글자 호를 따서 낙산헌(樂山軒)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수정 번역(Gemini2.5pro)

을사년(1785년) 봄, 나의 아버지께서 수령이 되어 안릉에 부임하셨다. 그해 가을, 아들인 내가 따라 그곳에 가서 그 위엄 있는 행차의 성대함을 볼 수 있었다. 병오년(1786년) 가을, 화공 김사능(김홍도)에게 명하여 그 행렬의 차례를 그리게 하였는데, 그림이 모두 완성되자 그 일을 서술하여 여기에 제발을 쓴다.

봄풀은 어머니 계신 집에 푸르고, 화목한 기운은 무성하구나. 십 리 길은 은빛 물결 같고, 가을 풍경은 백제의 궁궐 같네. 푸른 칼은 한 쌍의 언월도요, 검은 일산은 여러 번 바람에 나부끼네. 의장용 창을 든 군대의 모습은 엄숙하고, 깃발 늘어선 진영은 웅장하구나. 가마와 말의 장니는 푸르고, 관아 기생의 소매는 붉구나. 꽃무늬 종이 위에 붓을 휘두르니, 그 자취가 한 폭의 그림 속에 남았네.

무신년(1788년) 늦은 봄, 낙산헌이 쓰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