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번역 2 (Gemini 2.5 Pro)===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기존 번역===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
이인상 재배.
출처: 박희병,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 1 회화》, 돌베개, 2018, 200면.
===glossary review===
===glossary review===
<glossary status="draft" model="Gemini2.5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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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丁巳</hanmun>
<korean>정사</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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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육십갑자의 하나로, 이 글에서는 1737년(영조 13년)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이인상이 임장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했던 해를 특정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三淸</hanmun>
<korean>삼청</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이인상과 함께 구룡연을 유람한 임장(任丈)의 호(號)로 추정된다.</definition>
<sense_note>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된 인물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erson"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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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任丈</hanmun>
<korean>임장</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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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성이 임(任)씨인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 '丈'은 어른에 대한 존칭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인상이 동행했던 인물로, '삼청'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lace"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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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九龍淵</hanmun>
<korean>구룡연</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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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금강산에 있는 아홉 개의 폭포와 소(沼). 예로부터 명승지로 유명하다.</definition>
<sense_note>이 그림의 소재가 된 장소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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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以</hanmun>
<korean>이</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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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로써'(수단), '~하여'(순접), '~하기 위하여'(목적) 등 다양하게 쓰이는 전치사 또는 접속사.</definition>
작품 소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은 1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대의 많은 문인화가와 마찬가지로 진경산수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하단의 제발문(題跋文)에 의하면 1737년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15년이 지난 뒤에 그 감회를 회상하여 임장(任丈)에게 그려 바쳤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많은 화가도 구룡연을 그렸지만 이 같이 묵과 선을 절제하여 구룡연의 정수만을 표현한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화풍은 흔히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독특한 하나의 미감을 형성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른(임매)을 모시고 제9 용연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다만 무딘 붓과 옅은 먹을 사용하여 뼈대만을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채색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코 소홀히 대하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상은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번역 2 (Gemini 2.5 Pro)
정사년(1737년) 가을, 삼청 임장 어른을 모시고 구룡연을 구경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칩니다. 그런데 닳은 붓과 옅은 먹으로 뼈대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도 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히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이인상이 두 번 절하며 올립니다.
기존 번역
정사년(1737) 가을, 삼청동의 임 어르신(임안세任安世)을 모시고 구룡연을 보았다. 그 15년 뒤에 삼가 이 그림을 그려 바친다. 그러나 몽당붓과 담묵(淡墨)으로써 뼈만 그리고 살은 그리지 않았으며 색택(色澤)을 베풀지 않았거늘, 감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심회(心會)가 중요해서다.
이인상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