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01047:정빈민씨묘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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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배경과 목적== 정빈 민씨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에 앞서 정빈 민씨의 생애를 정리하고자 그의 묘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여흥 민씨의 인물 연구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정빈 민씨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지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AI 번역 내용== ===표점 원문=== 靜嬪閔氏。系出驪興,高麗名臣門下平章令謨之後也。曾大父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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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목적==
==배경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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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나의 해석에 따라 번역한 '''정빈민씨묘지'''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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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 민씨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에 앞서 정빈 민씨의 생애를 정리하고자 그의 묘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여흥 민씨의 인물 연구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정빈 민씨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지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정빈 민씨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에 앞서 정빈 민씨의 생애를 정리하고자 그의 묘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여흥 민씨의 인물 연구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정빈 민씨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지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AI 번역 내용==
==AI 번역 내용==
===표점 원문===
===표점 원문===
靜嬪閔氏。系出驪興,高麗名臣門下平章令謨之後也。曾大父諱子芳,尙康靖大王女敬淑翁主,爲驪川尉。大父諱希說,丹陽郡守贈吏曹參判。父諱士俊,江華都護府使。母孟夫人,籍新昌,國初相思誠之六世孫也。隆慶元年九月二十九日嬪生。宣祖卽位之十三年,冊淑儀,始十四。歷昭儀貴人,陞嬪,爲最貴。侍至尊三十年,恭敬畏愼,無一私恩干澤之事。上心敬之,每燕見,必冠。懿仁王后,亦禮遇殊甚。當兵革 a098_099d之世,從上西幸,備嘗艱難。及上登遐,持喪過節,退居私第。積疾十九年。仁穆太妃甚尊禮之,每以手札,問起居。謙下有禮,一以內訓自律。好儉約,常以溢尤爲戒,不御錦繡珠翠。私奉養孟夫人,至誠不怠。撫恤宗族,疏遠不遺。仁祖世連有大獄,長男仁城君連獄辭,事在鄭文簡公寬獄疏。上赦處原州,嬪常泣思。及疾革,少男仁興君上疏,乞母子相見。上感其言,寬釋之。未至而嬪卒。天啓六年十一月二日,春秋六十。上爲之弔賻特厚,令中貴人,抵喪葬之 a098_100a事。明年正月十七日,以禮葬楊州之塔谷。生二王子三翁主:仁城君珙、仁興君瑛。貞仁翁主下嫁唐原尉洪友敬。貞善翁主下嫁吉城君權大任。貞謹翁主下嫁一善尉金克鑌。仁城君五男:海平君佶、海安君億、海原君健、海寧君伋、海陽都正僖。仁興君二男:朗善君俁、朗原君侃。內外子孫甚多。銘曰:
靜嬪閔氏,系出驪興,高麗名臣門下平章令謨之後也。曾大父諱子芳,尙康靖大王女敬淑翁主,爲驪川尉。大父諱希說,丹陽郡守,贈吏曹參判。父諱士俊,江華都護府使。母孟夫人,籍新昌,國初相思誠之六世孫也。隆慶元年九月二十九日嬪生。宣祖卽位之十三年,冊淑儀,始十四。歷昭儀、貴人,陞嬪,爲最貴。侍至尊三十年,恭敬畏愼,無一私恩干澤之事。上心敬之,每燕見,必冠。懿仁王后,亦禮遇殊甚。當兵革之世,從上西幸,備嘗艱難。及上登遐,持喪過節,退居私第。積疾十九年,仁穆太妃甚尊禮之,每以手札,問起居。謙下有禮,一以內訓自律。好儉約,常以溢尤爲戒,不御錦繡珠翠。私奉養孟夫人,至誠不怠。撫恤宗族,疏遠不遺。仁祖世連有大獄,長男仁城君連獄辭,事在鄭文簡公寬獄疏。上赦處原州。嬪常泣思。及疾革,少男仁興君上疏,乞母子相見。上感其言,寬釋之。未至而嬪卒。天啓六年十一月二日,春秋六十。上爲之弔賻特厚,令中貴人,抵喪葬之事。明年正月十七日,以禮葬楊州之塔谷。生二王子、三翁主:仁城君珙,仁興君瑛。貞仁翁主下嫁唐原尉洪友敬,貞善翁主下嫁吉城君權大任,貞謹翁主下嫁一善尉金克鑌。仁城君五男:海平君佶,海安君億,海原君健,海寧君伋,海陽都正僖。仁興君二男:朗善君俁,朗原君侃。內外子孫甚多。銘曰:
貞而靜,淑而愼,安而信。三宮儀式,是順是勸是訓。
貞而靜,淑而愼,安而信。三宮儀式,是順、是勸、是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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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 선조의 후궁으로, 이 묘지명의 주인공이다.</definition>
<definition>조선 선조의 후궁으로, 이 묘지명의 주인공이다.</definition>
<sense_note>성은 민(閔)이고, 빈(嬪)은 정1품 후궁의 품계이며, 정(靜)은 시호이다.</sense_note>
<sense_note>정1품 빈(嬪)에 봉해졌으며, 성은 민씨, 시호는 정(靜)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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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여흥 민씨의 본관으로, 현재의 경기도 여주시 일대이다.</definition>
<definition>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으로, 여흥 민씨의 본관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 민씨임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 출신임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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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고려시대 문하성의 종1품 관직으로, 재상에 해당한다.</definition>
<definition>고려시대 최고 정무기관인 중서문하성의 고위 관직명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민영모(閔令謨)가 역임한 관직이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영모(令謨)가 역임했던 벼슬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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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之後也</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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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지후야</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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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의 후손이다’라는 의미로, 혈통이나 계보를 설명하는 문장의 끝에 사용된다.</definition>
<definition>문장 끝에 쓰여 단정이나 설명을 나타내는 어조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令謨之後也’와 같이 쓰여 민영모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sense_note>
<sense_note>'~이다'로 해석되며, 문장의 서술 관계를 명확히 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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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翁主</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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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옹주</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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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시대 왕의 후궁 소생의 딸에게 내리는 봉작이다.</definition>
<definition>돌아가신 분의 생전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 '휘'라고 읽으며, 직접 부르기를 피한다는 의미가 있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증조부 민자방이 경숙옹주와 혼인하였다.</sense_note>
<sense_note>묘지명이나 족보 등에서 조상의 이름을 기록할 때 관례적으로 사용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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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翁主</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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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옹주</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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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공주나 옹주와 결혼한 사람에게 주는 작위, 즉 부마(駙馬)를 뜻한다.</definition>
<definition>임금의 후궁이 낳은 딸에게 내리는 봉작이다.</definition>
<sense_note>‘驪川尉’는 민자방이 경숙옹주와 혼인하여 받은 작위이다.</sense_note>
<sense_note>왕비가 낳은 딸인 공주(公主)와 구분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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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贈</hanmun>
<korean>증</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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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죽은 뒤에 관직이나 시호를 추서하는 것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조부 민희설이 사후에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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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시대 정1품 내명부의 품계로,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이다.</definition>
<definition>조선 시대 정1품 후궁의 품계로, 후궁 가장 높은 지위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는 숙의,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었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는 숙의,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었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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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지극히 존귀한 존재라는 뜻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다.</definition>
<definition>지극히 존귀한 사람,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 임금을 가리킨다.</sense_note>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 임금을 지칭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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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干澤</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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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간택</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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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은혜나 이익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임금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私恩干澤之事’는 사사로운 은혜를 구하는 일을 뜻하며, 정빈이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sense_note>
<sense_note>문맥에 따라 선조 또는 인조를 가리킨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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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임금이 신하를 사사로이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는 일이다.</definition>
<definition>임금이 신하를 사사로이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는 일이다.</definition>
<sense_note>선조가 정빈을 연견할 때 반드시 관을 썼다는 것은 그녀를 존중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_note>선조가 정빈을 연견할 때 반드시 관을 썼다는 것은 그녀를 매우 존중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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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兵革</hanmun>
<korean>병혁</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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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전쟁. 이 문장에서는 임진왜란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병(兵)'은 무기, '혁(革)'은 갑옷을 의미하여 전쟁을 뜻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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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난 가는 것을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난 가는 것.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의주 피난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여기서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간 사건을 가리킨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가 이때 선조를 호종하며 고난을 겪었음을 서술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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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임금이나 황제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definition>
<definition>임금이나 황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의 죽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의 죽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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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過節</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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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과절</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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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예절이나 규범에 지나친 것을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에 이르러', '~할 때에'라는 의미로, 어떤 시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접속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持喪過節’은 상을 치르며 슬퍼함이 예법에 정해진 것보다 지나쳤음을 뜻한다.</sense_note>
<sense_note>'及上登遐(임금이 돌아가시자)', '及疾革(병이 위독해지자)' 등에서 쓰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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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手札</hanmun>
<hanmun>仁穆太妃</hanmun>
<korean>수찰</korean>
<korean>인목태비</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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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손수 쓴 편지나 글씨를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를 가리킨다. 선왕의 후궁으로서 왕의 어머니가 아닌 경우 태비(太妃)라 칭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목대비가 정빈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_note>인목태비가 정빈을 매우 존중하고 예우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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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內訓</hanmun>
<hanmun>內訓</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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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여성이 지켜야 할 규범과 도리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소혜왕후(인수대비)가 부녀자의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책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이 내훈으로써 스스로를 단속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이 스스로를 단속하는 기준으로 삼았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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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溢尤</hanmun>
<korean>일우</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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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허물을 뜻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이 항상 사치와 허물을 경계하며 검소하게 생활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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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번째 줄: 178번째 줄:
<korean>대옥</korean>
<korean>대옥</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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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국가적인 규모의 큰 옥사(獄事)로, 주로 역모 사건과 관련된 정치적 숙청을 말한다.</definition>
<definition>국가적인 규모의 큰 옥사로, 주로 역모 사건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 시대에 있었던 옥사에 장남 인성군이 연루되었음을 말한다.</sense_note>
<sense_note>인조 시대에 있었던 여러 옥사에 정빈의 아들 인성군이 연루되었음을 말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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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번째 줄: 189번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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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죄인이 심문을 받을 때 진술한 내용이나 기록을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죄인이 심문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나 그 기록이다.</definition>
<sense_note>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_note>'連獄辭'는 옥사 기록에 이름이 연루되었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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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疾革</hanmun>
<hanmun>上疏</hanmun>
<korean>질혁</korean>
<korean>상소</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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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병이 위독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의견이나 사정을 아뢰는 것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의 병이 위독해졌을 때를 가리킨다.</sense_note>
<sense_note>아들 인흥군이 어머니 정빈과 형 인성군이 만나게 해달라고 올린 글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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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에 이르러’, ~할 때에’라는 의미로, 어떤 시점이나 상황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접속사이다.</definition>
<definition>순접(그리고, ~해서) 또는 역접(그러나)의 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 ‘及上登遐(임금이 돌아가시자)’, ‘及疾革(병이 위독해지자)’ 등으로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_note>이 문장에서는 '未至而嬪卒(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이 졸하였다)'에서 역접의 의미로 쓰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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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弔賻</hanmun>
<hanmun>春秋</hanmun>
<korean>조부</korean>
<korean>춘추</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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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사람의 죽음을 슬퍼하여 조문하고, 장례에 쓰도록 돈이나 물품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가 정빈의 죽음에 특별히 후한 조부(弔賻)를 내렸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_note>'봄과 가을'이라는 뜻으로, 한 해를 의미하여 나이를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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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中貴人</hanmun>
<korean>중귀인</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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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궁궐 내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환관(宦官)을 가리키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임금이 중귀인을 시켜 정빈의 장례를 주관하게 하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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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두 개의 단어나 구, 절을 연결하는 접속사로, 순접(그리고, ~하며), 역접(그러나), 전환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definition>
<definition>비석이나 기물 등에 공적이나 사실을 새긴 글. 묘지명의 끝에 붙어 고인의 삶을 요약하고 기리는 운문체의 글이다.</definition>
<sense_note>마지막 명(銘)에서 ‘貞而靜(정숙하고 고요하며)’와 같이 순접의 의미로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_note>이 묘지명의 마지막 부분에 정빈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운문으로 기록되어 있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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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번째 줄: 238번째 줄:
<korean>시</korean>
<korean>시</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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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이것’을 의미하는 지시 대명사. 주어와 술어 사이에 위치하여 판단이나 설명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definition>
<definition>'이것'이라는 의미의 지시대명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마지막 명(銘)에서 ‘是順是勸是訓’과 같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이것이 바로 ~이다’라는 강조의 의미를 나타낸다.</sense_note>
<sense_note>묘지명 마지막 구절 '是順是勸是訓'에서는 '이것을'이라는 목적어로 쓰여 '삼궁의 의식'을 따르고, 권하고, 가르쳤음을 강조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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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번째 줄: 247번째 줄:


===용어집 초안에 따라 (또는 용어집 없이) 생성된 번역문===
===용어집 초안에 따라 (또는 용어집 없이) 생성된 번역문===
정빈 민씨는 계통이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으로, 강정대왕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설로, 단양군수를 지냈고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으로,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관이 신창으로, 나라 초기의 정승 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이 태어났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었으니, 이때 나이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어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임금을 30년간 모시면서 공손하고 조심하며 삼갔으며, 사사로운 은혜를 구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속으로 그녀를 공경하여, 매번 사사로이 만날 때마다 반드시 관을 썼다. 의인왕후 또한 예우가 매우 극진하였다. 전쟁의 시대를 맞아,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난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았다. 임금께서 돌아가시자,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상을 치르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였는데, 19년간 병이 쌓였다. 인목대비께서 그녀를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여, 매번 친히 쓴 편지로 안부를 물었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단속하였다.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허물을 경계하였고, 비단옷이나 구슬 장식을 입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고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보살피고 구휼하였는데, 먼 친척이라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조 시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옥사를 너그러이 처리하라는 상소)에 실려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머물게 하였으나, 빈은 항상 울며 그를 그리워했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모자가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그를 풀어주었으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빈이 세상을 떠났다. 천계 6년 11월 2일에 향년 60세였다. 임금께서 그녀를 위해 조문하고 부의를 보냄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장례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에 따라 양주의 탑골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았으니,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아들이 다섯이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아들이 둘이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신중하며, 편안하고 믿음직스러웠네. 삼궁의 모범이시니, 이를 따르고, 이를 권하고, 이를 가르칠지어다."
정빈 민씨. 세계는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설이니, 단양군수였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적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경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로 폐를 끼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으로 공경하시어, 매번 연견하실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유달리 극진하셨다. 전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난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셨다. 임금께서 돌아가시자, 상을 치름이 예법에 지나쳤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며 병이 쌓인 지 19년이 되었다. 인목태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시어, 매번 손수 쓴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비단옷이나 구슬 장신구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어루만져 구휼하고, 멀고 가까운 이를 가리지 않았다. 인조 시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안치시키자, 빈께서는 늘 울며 그리워하셨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모자가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셨으나, 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에 춘추 60세였다. 임금께서 조문하고 부의를 내림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게 하셨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로써 양주 탑곡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으셨으니,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다섯 아들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하여 이르기를,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것을 따르고, 이것을 권하고, 이것으로 가르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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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용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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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靜嬪閔氏</hanmun>
<hanmun>靜嬪閔氏</hanmun>
<korean>정빈 민씨</korean>
<korean>정빈민씨</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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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 14대 왕 선조(宣祖)의 후궁(後宮)으로, 이 묘지명의 주인공.</definition>
<definition>조선 선조의 후궁(1567-1626).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이 묘지명의 주인공이다.</definition>
<sense_note>성은 민()이며, 빈()은 후궁에게 내리는 가장 높은 품계인 정1품이다.</sense_note>
<sense_note>정1품 빈()에 올라 정빈(靜嬪)이라는 호를 받았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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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경기도 여주시의 옛 지명으로, 여흥 민씨(驪興 閔氏)의 본관(本貫)이다.</definition>
<definition>경기도 여주시의 옛 이름. 여흥 민씨의 본관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 민씨임을 밝히고 있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에서 비롯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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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고려시대 최고 행정기관인 문하성(門下省)의 고위 관직. 평장사(平章事)라고도 한다.</definition>
<definition>고려시대 문하성(門下省)의 종1품 벼슬. 재상(宰相)에 해당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민영모(閔令謨)가 이 직책을 지냈음을 언급하여 가문의 유서를 드러낸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민영모(閔令謨)가 지낸 벼슬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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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諱</hanmun>
<korean>휘</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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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돌아가신 조상의 생전 이름을 높여 부를 때 그 이름 앞에 붙이는 말.</definition>
<sense_note>글에서 증조부, 조부, 부친의 이름 앞에 모두 사용하여 경의를 표하고 있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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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문장 끝에 쓰여 단정, 설명, 판단의 어기를 나타내는 어조사.</definition>
<definition>왕의 사위가 되어 공주나 옹주에게 장가들다.</definition>
<sense_note>주로 '~이다'로 해석되며, '之後也'는 '~의 후손이다'라는 의미로 사실을 서술한다.</sense_note>
<sense_note>증조부 민자방이 강정대왕(성종)의 딸인 경숙옹주와 혼인한 것을 ''으로 표현했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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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 시대에 왕의 후궁이 낳은 딸에게 내리던 봉작.</definition>
<definition>조선 시대에 왕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게 내리는 봉작.</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증조부가 강정대왕의 딸인 경숙옹주와 혼인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_note>왕비 소생의 딸인 공주(公主)와 구분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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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왕의 사위에게 내리는 작위. 공주에게 장가들면 부마(駙馬), 옹주에게 장가들면 의빈(儀賓)이라 하며 통칭하여 '위'라고 한다.</definition>
<definition>공주나 옹주의 남편에게 주던 작위. 부마(駙馬)라고도 한다.</definition>
<sense_note>경숙옹주와 혼인한 민자방이 '여천위(驪川尉)'라는 작위를 받았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의 증조부는 여천위(驪川尉), 사위들은 당원위(唐原尉), 길성군(吉城君), 일선위(一善尉) 등의 봉작을 받았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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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나라에 공훈이 있는 관리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거나 관직을 주는 것. 추증(追贈)이라고도 한다.</definition>
<definition>나라에 공로가 있는 관리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거나 관직을 내리는 일. 추증(追贈)과 같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할아버지 민희열이 사후에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_note>조부 민희열이 사후에 이조참판으로 증직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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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隆慶</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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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융경</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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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중국 명나라 제12대 황제 목종(穆宗)의 연호(1567년 ~ 1572년).</definition>
<definition>조선 시대 내명부(內命婦)의 정1품 품계로,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출생 연도(융경 원년, 1567년)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는 숙의,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었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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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淑儀</hanmun>
<hanmun>至尊</hanmun>
<korean>숙의</korean>
<korean>지존</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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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 시대 내명부(內命婦)의 정2품 후궁 품계.</definition>
<definition>지극히 존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14세에 입궁하여 처음으로 받은 작위이다.</sense_note>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宣祖)를 가리킨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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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 시대 내명부(內命婦)의 정1품 후궁 품계로, 왕비 다음의 가장 높은 지위이다.</definition>
<definition>구하다, 간섭하다, 범하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여러 품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오른 지위이다.</sense_note>
<sense_note>'私恩干澤之事'는 사사로운 은혜를 내세워 공적인 혜택을 구하는 일을 의미한다. 정빈은 이러한 일이 전혀 없었다고 기술되어 있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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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至尊</hanmun>
<hanmun>燕見</hanmun>
<korean>지존</korean>
<korean>연견</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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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더할 나위 없이 존귀하다는 뜻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definition>
<definition>임금이 신하를 한가한 시간에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일.</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 임금을 지칭한다.</sense_note>
<sense_note>선조가 정빈을 연견할 때 반드시 관을 썼다는 것은 그녀를 매우 존중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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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兵革</hanmun>
<hanmun>兵革</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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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병기(兵器)와 갑옷(革)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여 전쟁, 병란을 의미한다.</definition>
<definition>병장기와 갑옷이라는 뜻으로, 전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문장에서는 임진왜란(1592-1598)을 가리킨다.</sense_note>
<sense_note>이 글에서는 임진왜란(1592-1598)을 가리킨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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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란 가는 .</definition>
<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란 가는 .</definition>
<sense_note>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왜군을 피해 의주(義州)로 피란 간 사건을 말한다.</sense_note>
<sense_note>임진왜란 선조가 의주(義州)로 피란 간 사건을 가리킨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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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뜻으로, 임금이나 왕후 등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definition>
<definition>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뜻으로, 임금이나 황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승하(昇遐)와 같다.</definition>
<sense_note>선조의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sense_note>
<sense_note>선조의 죽음을 높여 표현한 말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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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仁穆太妃</hanmun>
<korean>인목대비</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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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를 가리킨다. 선조 사후 대비(大妃)가 되었고, 인조반정 이후 대왕대비(大王大妃)가 되었다.</definition>
<sense_note>선조 사후에도 정빈 민씨를 존중하고 예우했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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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여성이 지켜야 할 규범과 교훈. 또는 그것을 기록한 책.</definition>
<definition>부녀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책 또는 그러한 가르침.</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스스로를 단속하는 기준으로 삼았음을 나타내어 그녀의 덕성을 칭송하고 있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가 스스로를 내훈의 가르침에 따라 다스렸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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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허물.</definition>
<definition>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그로 인한 허물.</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검소한 생활을 하며 항상 경계했던 것으로, 그녀의 성품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가 항상 사치를 경계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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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御</hanmun>
<korean>어</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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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임금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쓰다, 입다, 먹다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不御錦繡珠翠'는 비단옷과 구슬 장신구를 입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정빈의 검소함을 강조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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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국가적인 규모의 큰 옥사(獄事), 주로 역모와 관련된 사건을 가리킨다.</definition>
<definition>역모 등과 관련된 큰 옥사. 국가적인 규모의 정치적 사건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1624년 11월 당시 폐위되어 강화에 유배되어 있던 광해군을 상왕으로, 정빈 민씨의 아들 인성군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며, 이 사건에 아들 인성군이 연루되어 유배되었다.</sense_note>
<sense_note>인조 대에 연이어 발생한 옥사 중 하나에 장남 인성군이 연루되었음을 말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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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仁城君</hanmun>
<hanmun>獄辭</hanmun>
<korean>인성군</korean>
<korean>옥사</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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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정빈 민씨와 선조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 이름은 공(珙)이다.</definition>
<definition>죄인을 심문한 기록이나 진술서.</definition>
<sense_note>여러 차례 역모에 연루된 왕족이다. 1615년에 능창군과 관련된 역모에 엮여 유배되었지만 광해군이 비호했다. 인조반정 이후 앞선 대옥에 연루되어 원주로 유배되었으며, 정빈 민씨가 임종 직전까지 그리워한 아들이다. 1628년에 두 번 역모에 연루되어 결국 자진했다.</sense_note>
<sense_note>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어 그의 이름이 죄인의 진술에 언급되었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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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疾革</ha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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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질혁</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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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병이 위독해져 죽음에 임박한 상태.</definition>
<definition>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 상소문(上疏文)이라고도 한다.</definition>
<sense_note>()은 '급하다', '위급하다'는 뜻으로, '병이 위독해지자'로 해석된다.</sense_note>
<sense_note>정문간공(鄭文簡公) 정홍명(鄭弘溟)이 올린 상소문에 인성군 사건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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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天啓</hanmun>
<hanmun>疾革</hanmun>
<korean>천계</korean>
<korean>질혁</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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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중국 명나라 제15대 황제 희종(熹宗)의 연호(1621년 ~ 1627년).</definition>
<definition>병이 매우 위독함.</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사망한 해(천계 6년, 1626년)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가 임종에 가까웠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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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봄과 가을이라는 뜻으로, 세월을 의미하며 어른의 나이를 높여 부르는 말.</definition>
<definition>세월을 의미하며, 어른의 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_note>정빈 민씨가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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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中貴人</hanmun>
<hanmun>弔賻</hanmun>
<korean>중귀인</korean>
<korean>조부</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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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궁중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내시(환관)를 가리키는 말.</definition>
<definition>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보냄. 죽음을 슬퍼하고 상가에 물품을 보내 돕는 것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가 정빈 민씨의 장례를 특별히 후하게 치르도록 명하면서 보낸 인물이다.</sense_note>
<sense_note>인조가 정빈의 죽음에 대해 특별히 후하게 조의를 표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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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銘曰</hanmun>
<hanmun></hanmun>
<korean>명왈</korean>
<korean></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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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 scope="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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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새겨 이르기를'이라는 뜻으로, 묘지명이나 비문 등에서 마지막에 고인의 공덕을 기리는 운문(銘)이 시작됨을 알리는 구절.</definition>
<definition>공적이나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돌이나 쇠붙이 등에 새긴 글. 특히 묘비명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의 마지막 부분인 명(銘)의 시작을 알리며, 고인의 삶을 요약하고 칭송하는 내용이 이어진다.</sense_note>
<sense_note>묘지명의 마지막 부분에 고인의 덕을 기리는 운문 형식의 글이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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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仁祖</hanmun>
<hanmun></hanmun>
<korean>인조</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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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조선 제16대 왕. 선조의 손자이며 정원군의 아들이다.</definition>
<definition>지시대명사 '이것'. 동사 앞에 놓여 목적어를 도치시키고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는 인조 재위 기간에 사망했으며, 인조는 그녀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었다.</sense_note>
<sense_note>'是順是勸是訓'은 '이를 따르고(順是), 이를 권하고(勸是), 이를 가르침으로 삼는다(訓是)'는 도치 구문으로, 삼궁의 의식이야말로 따라야 할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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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용어집에 따라 생성된 번역문===
===수정 용어집에 따라 생성된 번역문===
정빈 민씨는 그 가계가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민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子芳)으로, 강정대왕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휘는 희열(希說)로, 단양군수를 지냈고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士俊)으로,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관이 신창으로, 나라 초기의 정승 맹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셨으니, 그때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하여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선조)을 30년간 모시면서 공손하고 조심하며 삼가, 사사로운 은혜를 구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속으로 공경하시어, 매번 편안히 만나실 때에도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매우 각별하셨다. 전쟁의 시대를 맞아,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란하며 온갖 어려움을 겪으셨다. 임금께서 승하하시자,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상을 치르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셨다. 병을 앓으신 19년이 되었다. 인목대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시어, 매번 친히 쓴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단속하셨다.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허물을 경계하였고, 비단옷이나 구슬 장식을 입거나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이 어머니 맹부인을 봉양함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종족들을 어루만져 돌보시되, 먼 친척이라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인조 시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맏아들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실려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안치시키자, 빈께서는 울며 그리워하셨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셨다. 그러나 (인성군이) 도착하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에 돌아가시니, 춘추는 60세였다. 임금께서 조문하고 부의를 내리는 것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아보게 하셨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에 따라 양주 탑골에 장사 지냈다. 2명의 왕자와 3명의 옹주를 낳으셨으니,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아들 다섯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아들 둘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에 이르기를,
정빈 민씨는 그 가계가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민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성종)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열이니, 단양군수를 지냈고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관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맹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손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를 내세워 공적인 혜택을 구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속으로 그를 공경하여, 매번 연견할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매우 각별하셨다. 병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란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았다. 임금께서 승하하시자,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상을 치르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였다. 병을 앓은 19년이었는데, 인목대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여 매번 친필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경계하였고, 비단옷과 구슬 장신구를 입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보살피고 구휼하여, 먼 친척이라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조 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으니,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실려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머물게 하였다. 빈께서는 항상 울며 아들을 그리워했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었다. (아들이) 도착하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이었으니, 춘추는 60세였다. 임금께서 그를 위해 조문하고 부의를 보냄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법에 따라 양주의 탑곡에 장사 지냈다. 왕자와 옹주를 낳았다.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아들 다섯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아들 둘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곧고 고요하며, 맑고 신중하며, 편안하고 믿음직스러웠네.
명에 이르기를,
삼궁의 의표가 되어, 이를 순히 따르고 이를 권하고 이를 가르쳤네.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를 따르고 이를 권하며 이를 가르침으로 삼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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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여러 음 중 대표음이 아닌 음을 사용하는 인명에 대해 수정하였다. 또한, 용어사전의 설명 속에 있는 설명을 보강하였다. 그 결과 번역의 어투가 조금 더 묘지에 알맞게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관계에 대해 일부 교정을 하였다. '민희설'로 잘못 기재된 인물명을 '민희열'로 교정하였다. 강정대왕을 성종으로 교정하였다. 그 결과, 인물 정보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분류:2601A]] [[분류:나의 AI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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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8일 (월) 02:25 기준 최신판

배경과 목적

AI가 나의 해석에 따라 번역한 정빈민씨묘지

정빈 민씨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에 앞서 정빈 민씨의 생애를 정리하고자 그의 묘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여흥 민씨의 인물 연구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정빈 민씨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지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AI 번역 내용

표점 원문

靜嬪閔氏,系出驪興,高麗名臣門下平章令謨之後也。曾大父諱子芳,尙康靖大王女敬淑翁主,爲驪川尉。大父諱希說,丹陽郡守,贈吏曹參判。父諱士俊,江華都護府使。母孟夫人,籍新昌,國初相思誠之六世孫也。隆慶元年九月二十九日嬪生。宣祖卽位之十三年,冊淑儀,始十四。歷昭儀、貴人,陞嬪,爲最貴。侍至尊三十年,恭敬畏愼,無一私恩干澤之事。上心敬之,每燕見,必冠。懿仁王后,亦禮遇殊甚。當兵革之世,從上西幸,備嘗艱難。及上登遐,持喪過節,退居私第。積疾十九年,仁穆太妃甚尊禮之,每以手札,問起居。謙下有禮,一以內訓自律。好儉約,常以溢尤爲戒,不御錦繡珠翠。私奉養孟夫人,至誠不怠。撫恤宗族,疏遠不遺。仁祖世連有大獄,長男仁城君連獄辭,事在鄭文簡公寬獄疏。上赦處原州。嬪常泣思。及疾革,少男仁興君上疏,乞母子相見。上感其言,寬釋之。未至而嬪卒。天啓六年十一月二日,春秋六十。上爲之弔賻特厚,令中貴人,抵喪葬之事。明年正月十七日,以禮葬楊州之塔谷。生二王子、三翁主:仁城君珙,仁興君瑛。貞仁翁主下嫁唐原尉洪友敬,貞善翁主下嫁吉城君權大任,貞謹翁主下嫁一善尉金克鑌。仁城君五男:海平君佶,海安君億,海原君健,海寧君伋,海陽都正僖。仁興君二男:朗善君俁,朗原君侃。內外子孫甚多。銘曰: 貞而靜,淑而愼,安而信。三宮儀式,是順、是勸、是訓。




용어집 초안

<glossary status="draft" model="Gemini2.5pro">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靜嬪閔氏</hanmun> <korean>정빈 민씨</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조선 선조의 후궁으로, 이 묘지명의 주인공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1품 빈(嬪)에 봉해졌으며, 성은 민씨, 시호는 정(靜)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lace" id=""> <lemma> <hanmun>驪興</hanmun> <korean>여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으로, 여흥 민씨의 본관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 출신임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門下平章</hanmun> <korean>문하평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고려시대 최고 정무기관인 중서문하성의 고위 관직명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영모(令謨)가 역임했던 벼슬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也</hanmun> <korean>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문장 끝에 쓰여 단정이나 설명을 나타내는 어조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다'로 해석되며, 문장의 서술 관계를 명확히 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諱</hanmun> <korean>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돌아가신 분의 생전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 '휘'라고 읽으며, 직접 부르기를 피한다는 의미가 있다.</definition> <sense_note>묘지명이나 족보 등에서 조상의 이름을 기록할 때 관례적으로 사용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翁主</hanmun> <korean>옹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의 후궁이 낳은 딸에게 내리는 봉작이다.</definition> <sense_note>왕비가 낳은 딸인 공주(公主)와 구분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嬪</hanmun> <korean>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선 시대 정1품 후궁의 품계로, 후궁 중 가장 높은 지위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는 숙의,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至尊</hanmun> <korean>지존</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지극히 존귀한 사람, 즉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 임금을 지칭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上</hanmun> <korean>상</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문맥에 따라 선조 또는 인조를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燕見</hanmun> <korean>연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이 신하를 사사로이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는 일이다.</definition> <sense_note>선조가 정빈을 연견할 때 반드시 관을 썼다는 것은 그녀를 매우 존중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兵革</hanmun> <korean>병혁</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전쟁. 이 문장에서는 임진왜란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병(兵)'은 무기, '혁(革)'은 갑옷을 의미하여 전쟁을 뜻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西幸</hanmun> <korean>서행</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난 가는 것.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의주 피난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이때 선조를 호종하며 고난을 겪었음을 서술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登遐</hanmun> <korean>등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이나 황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의 죽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及</hanmun> <korean>급</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에 이르러', '~할 때에'라는 의미로, 어떤 시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접속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及上登遐(임금이 돌아가시자)', '及疾革(병이 위독해지자)' 등에서 쓰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仁穆太妃</hanmun> <korean>인목태비</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를 가리킨다. 선왕의 후궁으로서 왕의 어머니가 아닌 경우 태비(太妃)라 칭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목태비가 정빈을 매우 존중하고 예우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Record" id=""> <lemma> <hanmun>內訓</hanmun> <korean>내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소혜왕후(인수대비)가 부녀자의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책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이 스스로를 단속하는 기준으로 삼았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大獄</hanmun> <korean>대옥</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국가적인 규모의 큰 옥사로, 주로 역모 사건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 시대에 있었던 여러 옥사에 정빈의 아들 인성군이 연루되었음을 말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獄辭</hanmun> <korean>옥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죄인이 심문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나 그 기록이다.</definition> <sense_note>'連獄辭'는 옥사 기록에 이름이 연루되었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上疏</hanmun> <korean>상소</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의견이나 사정을 아뢰는 것이다.</definition> <sense_note>아들 인흥군이 어머니 정빈과 형 인성군이 만나게 해달라고 올린 글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而</hanmun> <korean>이</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순접(그리고, ~해서) 또는 역접(그러나)의 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문장에서는 '未至而嬪卒(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이 졸하였다)'에서 역접의 의미로 쓰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春秋</hanmun> <korean>춘추</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봄과 가을'이라는 뜻으로, 한 해를 의미하여 나이를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銘</hanmun> <korean>명</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비석이나 기물 등에 공적이나 사실을 새긴 글. 묘지명의 끝에 붙어 고인의 삶을 요약하고 기리는 운문체의 글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묘지명의 마지막 부분에 정빈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운문으로 기록되어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是</hanmun> <korean>시</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이것'이라는 의미의 지시대명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묘지명 마지막 구절 '是順是勸是訓'에서는 '이것을'이라는 목적어로 쓰여 '삼궁의 의식'을 따르고, 권하고, 가르쳤음을 강조한다.</sense_note> </sense> </term> </glossary>




용어집 초안에 따라 (또는 용어집 없이) 생성된 번역문

정빈 민씨. 그 세계는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설이니, 단양군수였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적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경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로 폐를 끼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으로 공경하시어, 매번 연견하실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유달리 극진하셨다. 전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난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셨다. 임금께서 돌아가시자, 상을 치름이 예법에 지나쳤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며 병이 쌓인 지 19년이 되었다. 인목태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시어, 매번 손수 쓴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비단옷이나 구슬 장신구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어루만져 구휼하고, 멀고 가까운 이를 가리지 않았다. 인조 시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안치시키자, 빈께서는 늘 울며 그리워하셨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모자가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셨으나, 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에 춘추 60세였다. 임금께서 조문하고 부의를 내림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게 하셨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로써 양주 탑곡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으셨으니,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다섯 아들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하여 이르기를,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것을 따르고, 이것을 권하고, 이것으로 가르치셨네."




수정 용어집

<glossary status="revised" model="Gemini2.5pro">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靜嬪閔氏</hanmun> <korean>정빈민씨</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조선 선조의 후궁(1567-1626).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이 묘지명의 주인공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1품 빈(嬪)에 올라 정빈(靜嬪)이라는 호를 받았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lace" id=""> <lemma> <hanmun>驪興</hanmun> <korean>여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경기도 여주시의 옛 이름. 여흥 민씨의 본관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에서 비롯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門下平章</hanmun> <korean>문하평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고려시대 문하성(門下省)의 종1품 벼슬. 재상(宰相)에 해당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민영모(閔令謨)가 지낸 벼슬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諱</hanmun> <korean>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돌아가신 조상의 생전 이름을 높여 부를 때 그 이름 앞에 붙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 증조부, 조부, 부친의 이름 앞에 모두 사용하여 경의를 표하고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尙</hanmun> <korean>상</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왕의 사위가 되어 공주나 옹주에게 장가들다.</definition> <sense_note>증조부 민자방이 강정대왕(성종)의 딸인 경숙옹주와 혼인한 것을 '尙'으로 표현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翁主</hanmun> <korean>옹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선 시대에 왕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게 내리는 봉작.</definition> <sense_note>왕비 소생의 딸인 공주(公主)와 구분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尉</hanmun> <korean>위</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공주나 옹주의 남편에게 주던 작위. 부마(駙馬)라고도 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의 증조부는 여천위(驪川尉), 사위들은 당원위(唐原尉), 길성군(吉城君), 일선위(一善尉) 등의 봉작을 받았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贈</hanmun> <korean>증</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나라에 공로가 있는 관리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거나 관직을 내리는 일. 추증(追贈)과 같다.</definition> <sense_note>조부 민희열이 사후에 이조참판으로 증직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嬪</hanmun> <korean>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선 시대 내명부(內命婦)의 정1품 품계로,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는 숙의,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至尊</hanmun> <korean>지존</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지극히 존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宣祖)를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干</hanmun> <korean>간</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구하다, 간섭하다, 범하다.</definition> <sense_note>'私恩干澤之事'는 사사로운 은혜를 내세워 공적인 혜택을 구하는 일을 의미한다. 정빈은 이러한 일이 전혀 없었다고 기술되어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燕見</hanmun> <korean>연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이 신하를 한가한 시간에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일.</definition> <sense_note>선조가 정빈을 연견할 때 반드시 관을 썼다는 것은 그녀를 매우 존중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兵革</hanmun> <korean>병혁</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병장기와 갑옷이라는 뜻으로, 전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임진왜란(1592-1598)을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西幸</hanmun> <korean>서행</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란 가는 일.</definition> <sense_note>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義州)로 피란 간 사건을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登遐</hanmun> <korean>등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뜻으로, 임금이나 황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승하(昇遐)와 같다.</definition> <sense_note>선조의 죽음을 높여 표현한 말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內訓</hanmun> <korean>내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부녀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책 또는 그러한 가르침.</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스스로를 내훈의 가르침에 따라 다스렸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溢尤</hanmun> <korean>일우</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그로 인한 허물.</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항상 사치를 경계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御</hanmun> <korean>어</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임금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쓰다, 입다, 먹다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不御錦繡珠翠'는 비단옷과 구슬 장신구를 입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정빈의 검소함을 강조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大獄</hanmun> <korean>대옥</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역모 등과 관련된 큰 옥사. 국가적인 규모의 정치적 사건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 대에 연이어 발생한 옥사 중 하나에 장남 인성군이 연루되었음을 말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獄辭</hanmun> <korean>옥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죄인을 심문한 기록이나 진술서.</definition> <sense_note>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어 그의 이름이 죄인의 진술에 언급되었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Record" id=""> <lemma> <hanmun>疏</hanmun> <korean>소</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 상소문(上疏文)이라고도 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문간공(鄭文簡公) 정홍명(鄭弘溟)이 올린 상소문에 인성군 사건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疾革</hanmun> <korean>질혁</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병이 매우 위독함.</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임종에 가까웠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春秋</hanmun> <korean>춘추</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세월을 의미하며, 어른의 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弔賻</hanmun> <korean>조부</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보냄. 죽음을 슬퍼하고 상가에 물품을 보내 돕는 것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가 정빈의 죽음에 대해 특별히 후하게 조의를 표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銘</hanmun> <korean>명</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공적이나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돌이나 쇠붙이 등에 새긴 글. 특히 묘비명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묘지명의 마지막 부분에 고인의 덕을 기리는 운문 형식의 글이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是</hanmun> <korean>시</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지시대명사 '이것'. 동사 앞에 놓여 목적어를 도치시키고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definition> <sense_note>'是順是勸是訓'은 '이를 따르고(順是), 이를 권하고(勸是), 이를 가르침으로 삼는다(訓是)'는 도치 구문으로, 삼궁의 의식이야말로 따라야 할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한다.</sense_note> </sense> </term> </glossary>




수정 용어집에 따라 생성된 번역문

정빈 민씨는 그 가계가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민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성종)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열이니, 단양군수를 지냈고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관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맹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손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를 내세워 공적인 혜택을 구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속으로 그를 공경하여, 매번 연견할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매우 각별하셨다. 병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란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았다. 임금께서 승하하시자,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상을 치르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였다. 병을 앓은 지 19년이었는데, 인목대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여 매번 친필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경계하였고, 비단옷과 구슬 장신구를 입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보살피고 구휼하여, 먼 친척이라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조 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으니,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실려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머물게 하였다. 빈께서는 항상 울며 아들을 그리워했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었다. (아들이) 도착하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이었으니, 춘추는 60세였다. 임금께서 그를 위해 조문하고 부의를 보냄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법에 따라 양주의 탑곡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았다.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아들 다섯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아들 둘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에 이르기를,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를 따르고 이를 권하며 이를 가르침으로 삼았네.




번역 비교

🤖AI 번역 초안 🤖+😀나의 AI 번역

사실 관계에 대해 일부 교정을 하였다. '민희설'로 잘못 기재된 인물명을 '민희열'로 교정하였다. 강정대왕을 성종으로 교정하였다. 그 결과, 인물 정보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