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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 민씨. 그 세계는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설이니, 단양군수였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적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경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로 폐를 끼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으로 공경하시어, 매번 연견하실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유달리 극진하셨다. 전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난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셨다. 임금께서 돌아가시자, 상을 치름이 예법에 지나쳤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며 병이 쌓인 지 19년이 되었다. 인목태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시어, 매번 손수 쓴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비단옷이나 구슬 장신구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어루만져 구휼하고, 멀고 가까운 이를 가리지 않았다. 인조 시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안치시키자, 빈께서는 늘 울며 그리워하셨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모자가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셨으나, 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에 춘추 60세였다. 임금께서 조문하고 부의를 내림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게 하셨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로써 양주 탑곡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으셨으니,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다섯 아들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하여 이르기를,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것을 따르고, 이것을 권하고, 이것으로 가르치셨네." | 정빈 민씨. 그 세계는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설이니, 단양군수였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적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경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로 폐를 끼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으로 공경하시어, 매번 연견하실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유달리 극진하셨다. 전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난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셨다. 임금께서 돌아가시자, 상을 치름이 예법에 지나쳤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며 병이 쌓인 지 19년이 되었다. 인목태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시어, 매번 손수 쓴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비단옷이나 구슬 장신구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어루만져 구휼하고, 멀고 가까운 이를 가리지 않았다. 인조 시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안치시키자, 빈께서는 늘 울며 그리워하셨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모자가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셨으나, 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에 춘추 60세였다. 임금께서 조문하고 부의를 내림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게 하셨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로써 양주 탑곡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으셨으니,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다섯 아들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하여 이르기를,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것을 따르고, 이것을 권하고, 이것으로 가르치셨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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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8일 (월) 02:25 기준 최신판
배경과 목적
AI가 나의 해석에 따라 번역한 정빈민씨묘지
정빈 민씨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에 앞서 정빈 민씨의 생애를 정리하고자 그의 묘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여흥 민씨의 인물 연구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정빈 민씨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지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AI 번역 내용
표점 원문
靜嬪閔氏,系出驪興,高麗名臣門下平章令謨之後也。曾大父諱子芳,尙康靖大王女敬淑翁主,爲驪川尉。大父諱希說,丹陽郡守,贈吏曹參判。父諱士俊,江華都護府使。母孟夫人,籍新昌,國初相思誠之六世孫也。隆慶元年九月二十九日嬪生。宣祖卽位之十三年,冊淑儀,始十四。歷昭儀、貴人,陞嬪,爲最貴。侍至尊三十年,恭敬畏愼,無一私恩干澤之事。上心敬之,每燕見,必冠。懿仁王后,亦禮遇殊甚。當兵革之世,從上西幸,備嘗艱難。及上登遐,持喪過節,退居私第。積疾十九年,仁穆太妃甚尊禮之,每以手札,問起居。謙下有禮,一以內訓自律。好儉約,常以溢尤爲戒,不御錦繡珠翠。私奉養孟夫人,至誠不怠。撫恤宗族,疏遠不遺。仁祖世連有大獄,長男仁城君連獄辭,事在鄭文簡公寬獄疏。上赦處原州。嬪常泣思。及疾革,少男仁興君上疏,乞母子相見。上感其言,寬釋之。未至而嬪卒。天啓六年十一月二日,春秋六十。上爲之弔賻特厚,令中貴人,抵喪葬之事。明年正月十七日,以禮葬楊州之塔谷。生二王子、三翁主:仁城君珙,仁興君瑛。貞仁翁主下嫁唐原尉洪友敬,貞善翁主下嫁吉城君權大任,貞謹翁主下嫁一善尉金克鑌。仁城君五男:海平君佶,海安君億,海原君健,海寧君伋,海陽都正僖。仁興君二男:朗善君俁,朗原君侃。內外子孫甚多。銘曰: 貞而靜,淑而愼,安而信。三宮儀式,是順、是勸、是訓。
용어집 초안
<glossary status="draft" model="Gemini2.5pro">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靜嬪閔氏</hanmun> <korean>정빈 민씨</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조선 선조의 후궁으로, 이 묘지명의 주인공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1품 빈(嬪)에 봉해졌으며, 성은 민씨, 시호는 정(靜)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lace" id=""> <lemma> <hanmun>驪興</hanmun> <korean>여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으로, 여흥 민씨의 본관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 출신임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門下平章</hanmun> <korean>문하평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고려시대 최고 정무기관인 중서문하성의 고위 관직명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영모(令謨)가 역임했던 벼슬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也</hanmun> <korean>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문장 끝에 쓰여 단정이나 설명을 나타내는 어조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다'로 해석되며, 문장의 서술 관계를 명확히 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諱</hanmun> <korean>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돌아가신 분의 생전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 '휘'라고 읽으며, 직접 부르기를 피한다는 의미가 있다.</definition> <sense_note>묘지명이나 족보 등에서 조상의 이름을 기록할 때 관례적으로 사용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翁主</hanmun> <korean>옹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의 후궁이 낳은 딸에게 내리는 봉작이다.</definition> <sense_note>왕비가 낳은 딸인 공주(公主)와 구분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嬪</hanmun> <korean>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선 시대 정1품 후궁의 품계로, 후궁 중 가장 높은 지위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는 숙의,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至尊</hanmun> <korean>지존</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지극히 존귀한 사람, 즉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 임금을 지칭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上</hanmun> <korean>상</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문맥에 따라 선조 또는 인조를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燕見</hanmun> <korean>연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이 신하를 사사로이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는 일이다.</definition> <sense_note>선조가 정빈을 연견할 때 반드시 관을 썼다는 것은 그녀를 매우 존중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兵革</hanmun> <korean>병혁</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전쟁. 이 문장에서는 임진왜란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병(兵)'은 무기, '혁(革)'은 갑옷을 의미하여 전쟁을 뜻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西幸</hanmun> <korean>서행</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난 가는 것.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의주 피난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이때 선조를 호종하며 고난을 겪었음을 서술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登遐</hanmun> <korean>등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이나 황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의 죽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及</hanmun> <korean>급</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에 이르러', '~할 때에'라는 의미로, 어떤 시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접속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及上登遐(임금이 돌아가시자)', '及疾革(병이 위독해지자)' 등에서 쓰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仁穆太妃</hanmun> <korean>인목태비</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를 가리킨다. 선왕의 후궁으로서 왕의 어머니가 아닌 경우 태비(太妃)라 칭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목태비가 정빈을 매우 존중하고 예우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Record" id=""> <lemma> <hanmun>內訓</hanmun> <korean>내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소혜왕후(인수대비)가 부녀자의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책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이 스스로를 단속하는 기준으로 삼았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大獄</hanmun> <korean>대옥</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국가적인 규모의 큰 옥사로, 주로 역모 사건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 시대에 있었던 여러 옥사에 정빈의 아들 인성군이 연루되었음을 말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獄辭</hanmun> <korean>옥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죄인이 심문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나 그 기록이다.</definition> <sense_note>'連獄辭'는 옥사 기록에 이름이 연루되었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上疏</hanmun> <korean>상소</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의견이나 사정을 아뢰는 것이다.</definition> <sense_note>아들 인흥군이 어머니 정빈과 형 인성군이 만나게 해달라고 올린 글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而</hanmun> <korean>이</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순접(그리고, ~해서) 또는 역접(그러나)의 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문장에서는 '未至而嬪卒(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이 졸하였다)'에서 역접의 의미로 쓰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春秋</hanmun> <korean>춘추</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definition> <sense_note>'봄과 가을'이라는 뜻으로, 한 해를 의미하여 나이를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銘</hanmun> <korean>명</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비석이나 기물 등에 공적이나 사실을 새긴 글. 묘지명의 끝에 붙어 고인의 삶을 요약하고 기리는 운문체의 글이다.</definition> <sense_note>이 묘지명의 마지막 부분에 정빈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운문으로 기록되어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是</hanmun> <korean>시</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이것'이라는 의미의 지시대명사이다.</definition> <sense_note>묘지명 마지막 구절 '是順是勸是訓'에서는 '이것을'이라는 목적어로 쓰여 '삼궁의 의식'을 따르고, 권하고, 가르쳤음을 강조한다.</sense_note> </sense> </term> </glossary>
용어집 초안에 따라 (또는 용어집 없이) 생성된 번역문
정빈 민씨. 그 세계는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설이니, 단양군수였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적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경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로 폐를 끼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으로 공경하시어, 매번 연견하실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유달리 극진하셨다. 전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난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셨다. 임금께서 돌아가시자, 상을 치름이 예법에 지나쳤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며 병이 쌓인 지 19년이 되었다. 인목태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시어, 매번 손수 쓴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비단옷이나 구슬 장신구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어루만져 구휼하고, 멀고 가까운 이를 가리지 않았다. 인조 시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다.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안치시키자, 빈께서는 늘 울며 그리워하셨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모자가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셨으나, 아들이 이르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에 춘추 60세였다. 임금께서 조문하고 부의를 내림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게 하셨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로써 양주 탑곡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으셨으니,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다섯 아들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하여 이르기를,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것을 따르고, 이것을 권하고, 이것으로 가르치셨네."
수정 용어집
<glossary status="revised" model="Gemini2.5pro">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靜嬪閔氏</hanmun> <korean>정빈민씨</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조선 선조의 후궁(1567-1626).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이 묘지명의 주인공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1품 빈(嬪)에 올라 정빈(靜嬪)이라는 호를 받았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Place" id=""> <lemma> <hanmun>驪興</hanmun> <korean>여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경기도 여주시의 옛 이름. 여흥 민씨의 본관이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가문이 여흥에서 비롯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門下平章</hanmun> <korean>문하평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고려시대 문하성(門下省)의 종1품 벼슬. 재상(宰相)에 해당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의 선조인 민영모(閔令謨)가 지낸 벼슬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諱</hanmun> <korean>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돌아가신 조상의 생전 이름을 높여 부를 때 그 이름 앞에 붙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 증조부, 조부, 부친의 이름 앞에 모두 사용하여 경의를 표하고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尙</hanmun> <korean>상</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왕의 사위가 되어 공주나 옹주에게 장가들다.</definition> <sense_note>증조부 민자방이 강정대왕(성종)의 딸인 경숙옹주와 혼인한 것을 '尙'으로 표현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翁主</hanmun> <korean>옹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선 시대에 왕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게 내리는 봉작.</definition> <sense_note>왕비 소생의 딸인 공주(公主)와 구분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尉</hanmun> <korean>위</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공주나 옹주의 남편에게 주던 작위. 부마(駙馬)라고도 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빈의 증조부는 여천위(驪川尉), 사위들은 당원위(唐原尉), 길성군(吉城君), 일선위(一善尉) 등의 봉작을 받았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贈</hanmun> <korean>증</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나라에 공로가 있는 관리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거나 관직을 내리는 일. 추증(追贈)과 같다.</definition> <sense_note>조부 민희열이 사후에 이조참판으로 증직되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嬪</hanmun> <korean>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선 시대 내명부(內命婦)의 정1품 품계로,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는 숙의,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至尊</hanmun> <korean>지존</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지극히 존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선조(宣祖)를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干</hanmun> <korean>간</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구하다, 간섭하다, 범하다.</definition> <sense_note>'私恩干澤之事'는 사사로운 은혜를 내세워 공적인 혜택을 구하는 일을 의미한다. 정빈은 이러한 일이 전혀 없었다고 기술되어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燕見</hanmun> <korean>연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임금이 신하를 한가한 시간에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일.</definition> <sense_note>선조가 정빈을 연견할 때 반드시 관을 썼다는 것은 그녀를 매우 존중했음을 보여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兵革</hanmun> <korean>병혁</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병장기와 갑옷이라는 뜻으로, 전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임진왜란(1592-1598)을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西幸</hanmun> <korean>서행</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임금이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피란 가는 일.</definition> <sense_note>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義州)로 피란 간 사건을 가리킨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登遐</hanmun> <korean>등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뜻으로, 임금이나 황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승하(昇遐)와 같다.</definition> <sense_note>선조의 죽음을 높여 표현한 말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內訓</hanmun> <korean>내훈</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부녀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책 또는 그러한 가르침.</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스스로를 내훈의 가르침에 따라 다스렸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溢尤</hanmun> <korean>일우</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그로 인한 허물.</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항상 사치를 경계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御</hanmun> <korean>어</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임금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쓰다, 입다, 먹다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不御錦繡珠翠'는 비단옷과 구슬 장신구를 입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정빈의 검소함을 강조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Event" id=""> <lemma> <hanmun>大獄</hanmun> <korean>대옥</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역모 등과 관련된 큰 옥사. 국가적인 규모의 정치적 사건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 대에 연이어 발생한 옥사 중 하나에 장남 인성군이 연루되었음을 말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獄辭</hanmun> <korean>옥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죄인을 심문한 기록이나 진술서.</definition> <sense_note>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어 그의 이름이 죄인의 진술에 언급되었음을 의미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Record" id=""> <lemma> <hanmun>疏</hanmun> <korean>소</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 상소문(上疏文)이라고도 한다.</definition> <sense_note>정문간공(鄭文簡公) 정홍명(鄭弘溟)이 올린 상소문에 인성군 사건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疾革</hanmun> <korean>질혁</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병이 매우 위독함.</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임종에 가까웠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春秋</hanmun> <korean>춘추</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세월을 의미하며, 어른의 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definition> <sense_note>정빈 민씨가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弔賻</hanmun> <korean>조부</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보냄. 죽음을 슬퍼하고 상가에 물품을 보내 돕는 것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인조가 정빈의 죽음에 대해 특별히 후하게 조의를 표했음을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銘</hanmun> <korean>명</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공적이나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돌이나 쇠붙이 등에 새긴 글. 특히 묘비명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묘지명의 마지막 부분에 고인의 덕을 기리는 운문 형식의 글이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이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是</hanmun> <korean>시</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지시대명사 '이것'. 동사 앞에 놓여 목적어를 도치시키고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definition> <sense_note>'是順是勸是訓'은 '이를 따르고(順是), 이를 권하고(勸是), 이를 가르침으로 삼는다(訓是)'는 도치 구문으로, 삼궁의 의식이야말로 따라야 할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한다.</sense_note> </sense> </term> </glossary>
수정 용어집에 따라 생성된 번역문
정빈 민씨는 그 가계가 여흥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명신 문하평장 민영모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휘는 자방이니, 강정대왕(성종)의 딸 경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여천위가 되었다. 조부의 휘는 희열이니, 단양군수를 지냈고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사준이니, 강화도호부사였다. 어머니 맹부인은 본관이 신창으로, 국초의 정승 맹사성의 6세손이다. 융경 원년 9월 29일에 빈께서 태어나셨다. 선조 즉위 13년에 숙의로 책봉되니, 나이 겨우 14세였다. 소의, 귀인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니, 가장 존귀한 지위에 올랐다. 지존을 30년간 모시면서 공손하고 조심하며 삼가서, 사사로운 은혜를 내세워 공적인 혜택을 구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임금께서 마음속으로 그를 공경하여, 매번 연견할 때마다 반드시 관을 쓰셨다. 의인왕후께서도 또한 예우가 매우 각별하셨다. 병혁의 시대를 당하여,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피란하며 온갖 어려움을 맛보았다. 임금께서 승하하시자,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상을 치르고 사가로 물러나 거처하였다. 병을 앓은 지 19년이었는데, 인목대비께서 매우 존중하고 예우하여 매번 친필 편지로 안부를 물으셨다. 겸손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한결같이 내훈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검소함을 좋아하여 항상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경계하였고, 비단옷과 구슬 장신구를 입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사사로이 맹부인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종족들을 보살피고 구휼하여, 먼 친척이라도 빠뜨리지 않았다. 인조 대에 연이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장남 인성군이 옥사에 연루되었으니, 그 일은 정문간공의 「관옥소」에 실려 있다. 임금께서 사면하여 원주에 머물게 하였다. 빈께서는 항상 울며 아들을 그리워했다. 병이 위독해지자, 작은아들 인흥군이 상소를 올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임금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너그러이 풀어주었다. (아들이) 도착하기 전에 빈께서 돌아가셨다. 천계 6년 11월 2일이었으니, 춘추는 60세였다. 임금께서 그를 위해 조문하고 부의를 보냄이 특별히 후하였고, 중귀인에게 명하여 상장례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이듬해 정월 17일에 예법에 따라 양주의 탑곡에 장사 지냈다. 두 왕자와 세 옹주를 낳았다. 인성군 공과 인흥군 영이다. 정인옹주는 당원위 홍우경에게, 정선옹주는 길성군 권대임에게, 정근옹주는 일선위 김극빈에게 시집갔다. 인성군은 아들 다섯을 두었으니, 해평군 길, 해안군 억, 해원군 건, 해녕군 급, 해양도정 희이다. 인흥군은 아들 둘을 두었으니, 낭선군 우와 낭원군 간이다. 내외 자손이 매우 많다. 명에 이르기를, 정숙하고 고요하며, 맑고 삼가며, 편안하고 믿음직하셨네. 삼궁의 의식을, 이를 따르고 이를 권하며 이를 가르침으로 삼았네.
번역 비교
| 🤖AI 번역 초안 | 🤖+😀나의 AI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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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계에 대해 일부 교정을 하였다. '민희설'로 잘못 기재된 인물명을 '민희열'로 교정하였다. 강정대왕을 성종으로 교정하였다. 그 결과, 인물 정보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