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01001:강세황-피금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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披襟亭 在金化縣北 臨大川. | |||
川之源 出於金剛山 故其水極淸. | |||
亭之制度 甚壯麗 枕流處 甃石爲壁 高可數丈. | |||
余曾於四十年前 遊此 至今不忘. | |||
今番再過 依然如舊 而余則老矣 慨然有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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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7일 (목) 14:21 판

작품/작가
- 제목: 피금정(披襟亭)
- 작품 소개: 이 작품은 강세황의 77세 때 만년작(晩年作)으로서 1789년 그의 맏아들 이 회양부사로 부임하였을 때 금성(金城)의 피금정을 지나며 어린시절을 회상하여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그의 또 다른 실경작품인 『풍악장유첩(楓嶽壯遊帖)』(덕수3922)과 같은 스케치풍의 실경과는 달리 현장에서 사생하지 않고 회양의 치헌에 돌아와서 그렸다고 한다. 진경의 맛보다는 오히려 중국산수화를 연상시키며 꼼꼼한 필치를 사용하였다. 그의 진경산수화 중에 가장 큰 것이며 그의 회화 구성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화가: 강세황(姜世晃, 1713-1791)
- 제발 저자: 강세황
- 시대: 조선, 1789년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제발(題跋)
원문
披襟亭 在金化縣北 臨大川. 川之源 出於金剛山 故其水極淸. 亭之制度 甚壯麗 枕流處 甃石爲壁 高可數丈. 余曾於四十年前 遊此 至今不忘. 今番再過 依然如舊 而余則老矣 慨然有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