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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코로나 시기의 개문과 함께 어느 초등학교의 보안관으로 등교했습니다. 체육관 건물이 건립되자 제가 근무할 방치되었던 건물도 일으켜 세워졌습니다. 이 건물은 한 평도 되지 않게 좁아서 출입문을 열고 의자를 돌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지난 2020년 코로나 시기의 개문과 함께 어느 초등학교의 보안관으로 등교했습니다. 체육관 건물이 건립되자 제가 근무할 방치되었던 건물도 일으켜 세워졌습니다. 이 건물은 한 평도 되지 않게 좁아서 출입문을 열고 의자를 돌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
체육관을 짓느라 비산먼지와 안전 때문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않고, 더군다나 큰 고원이 인접되어 있어서 운동장은 풀이 무성했습니다. 일 년 반 동안 하루 여덟 시간동안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안에서는 집중과 밖에서는 봄부터 가을끝자락까지 발초(撥草)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 체육관을 짓느라 비산먼지와 안전 때문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않고, 더군다나 큰 고원이 인접되어 있어서 운동장은 풀이 무성했습니다. 일 년 반 동안 하루 여덟 시간동안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안에서는 집중과 밖에서는 봄부터 가을끝자락까지 발초(撥草)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 ||
2026년 3월 12일 (목) 08: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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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병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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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번 | S2601016 |
| 소속 | 전국비구니회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 샤카디타 코리아 |
| 관심분야 | 불교 경전 읽기, 참선 |
| 홈페이지 | 바로가기 |
CCTI 접속
*프로젝트 ID: S2601016
자기 소개
저의 이름은 무념(無念) 이병두(李炳斗) 입니다.
두보(杜甫)의 시‘곡강(曲江)’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는데, 어느 새 저도 고희(古稀)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과거[古], 미래[來], 그리고 현재[稀]: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自(我).
지난 2020년 코로나 시기의 개문과 함께 어느 초등학교의 보안관으로 등교했습니다. 체육관 건물이 건립되자 제가 근무할 방치되었던 건물도 일으켜 세워졌습니다. 이 건물은 한 평도 되지 않게 좁아서 출입문을 열고 의자를 돌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체육관을 짓느라 비산먼지와 안전 때문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않고, 더군다나 큰 고원이 인접되어 있어서 운동장은 풀이 무성했습니다. 일 년 반 동안 하루 여덟 시간동안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안에서는 집중과 밖에서는 봄부터 가을끝자락까지 발초(撥草)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畜(衆).
2026년 어느 날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습니다.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말하기를 누군가 허락 없이 유료폐기물을 버려서 3천원을 물어내야할 판이라고 걱정하셔서 저는 얼른 그 돈을 가져다 드리니 그의 시름이 걷혔습니다.(물론 제가 버린 것은 아닙니다.)
忍.
불경에 앙굴리말라(央掘摩羅)의 스승이 그에게 아내와의 불륜을 의심하여 수행을 완성하기 위해 100명의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석가모니부처님은 100번째 사람으로 그의 앞에 나아갔습니다. "수행자여, 그대는 인내하라. 그대는 인내하라. 그대가 업의 과보로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지옥에서 받을 업보를 그대가 지금 여기서 받는 것이다."
妙.
2018년 초 겨울이 끝나갈 무렵 불교명상지도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마지막 이틀 강의 첫날 선학을 전공하시는 한 교수님께서 간절한 마음으로 참선을 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어떤 마음이 제일 간절한 마음일까 하는 생각에 눈을 감고 심장에 비수를 꽂는 마음 자세를 취했습니다. 참선하는 삼십분 가까이 저는 깊은 동굴 아래로 한 없이 들어갔습니다. 다음날도 그렇게 똑같이 했는데 큰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동굴의 끝 바닥에 도착한 듯 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종료하고 이틀 뒤 새벽이었습니다. 집에서 참선을 하는 중에 몸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쉼 없는 천둥번개와 함께 동굴의 단단한 바위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무서움으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산산이 무너진 다음에 사방으로 드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동이 튼 새벽녘 고요함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황홀감에 젖어 한동안 그대로 있었습니다.
診.
그 후로 한 달 지나 양양 낙산사의 2005년 대화재 복원불사를 진행했던 한 스님의 법문 중에 낙산사는 전각이 극한의 강풍으로 모두 불탔으나 홍련암과 더불어 역풍으로 사천왕문만 화재를 면했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낙산사 사천왕문이 화재를 어떻게 면했는가'하는 대의심(大疑心)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나는 몇몇 사찰의 사천왕을 인터넷 검색하고 관련 도서를 찾았으나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관조스님의 사진 이대암 글의 『사천왕』은 좋은 영감을 주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寫.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중앙대에서 흑백사진 인화과정과 상명대에서 사진비평과정을, 이 두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사진 공부를 했습니다. 그중 상명대의 사진비평과정 수업은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인화하여 10~20 장 정도를 순서에 맞게 펼쳐놓고 설명과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사진을 볼 때마다 자주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사진이 써틀(subtle)하다 하였는데, 써틀은 사전적으로 '미묘한, 섬세한, 미세한, 교묘한, 민감한'의 뜻이 있습니다. 그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말로 정확하게 정의하여 설명하는데 애먹으셨습니다. 어느 날 졸업사진 전시를 위해 마지막 인화를 마치고 강변북로를 달리는데 이는 첫눈의 눈발이 벚꽃처럼 날렸습니다. 며칠 지나 교수님께서 전시 사진을 보시더니, “바로 이거야!”하시는 말로 써틀의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悟.
지난 2017년 부처님오신날 다음 주, 미국 L.A. 한인 동포를 위한 합창공연을 갔던 차에, 대만 사찰 서래사(西來寺)를 방문해서 큰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찰 방문일정을 마치고 드넓은 도량을 우뚝 솟은 일주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 일주문 네 개의 기둥위에 세계의 기와집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기와집의 위에는 佛日增輝, 아래는 四弘誓願의 현판이 있고, 네 기둥의 오른쪽부터 각각의 서원을 새긴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나는 문득 한 생각이 나를 소름 돋게 했습니다. "유레카(由來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전면에 있는 천왕문은 곧 안쪽에서는 사홍서원을 밖에서는 사찰은 곧 이것이다 것을 보여주는 전각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 교수님이 애써 말하고자 했던 써틀(subtle)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味.
그것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상징성이 더 있습니다. 선운사 사천왕문의 네 분의 천왕의 시선은 아래로 그를 받들고 있는 중생의 시선은 위로 향해 있는데, 그 모습은 보는 이와 시선을 맞추는 모습입니다. 발밑의 중생들의 모습에서 칠불통계(七佛通戒)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악행도 짓지 말고, 선한 일은 받들어 행하되, 그러한 마음으로 세상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과거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하는 것입니다. 전주(완주) 종남산 송광사 사천왕문의 바깥쪽은 天王門(천왕문), 안쪽은 天王殿(천왕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다른 천왕문과 달리 문의 앞뒤로 문짝이 있고, 그 안에 네 천왕과 권속을 대표하여 여러 중생이 있어서 그곳이 왕실의 궁궐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信.
신시일체공덕모(信是一切功德母), 믿음은 일체 공덕의 어머니라. 세상 어떠한 종교든 간절한 믿음의 문을 통과해야만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이미 들어섰거나 아예 들어서기 전부터 어떠한 알음알이도 내지 말라합니다. 또 일단 들어섰다 하더라도 호흡만으로도 머리카락 한 올마저 자를 수 있는 취모검(吹毛劍)으로 모조리 잘라버립니다.
有.
천왕문에 대해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사찰에서는 아침에 법당 앞에서 육도중생을 깨워 도량석을 시작으로 하루일과가 진행됩니다. 이 일과의 시작과 끝은 바로 태양이 솟아 지나가는 하늘의 방향이며, 천왕과 권속의 일과입니다. 인시(寅時)에 모든 생명이 일어나 새벽 예불을 시작하면 동남서 방향으로 수행과 삶의 일과가 진행되고, 해가 진 유시(酉時)부터 서북동 방향으로 성취와 회향의 시간입니다.
術.
위산(영우) 선사가 말하기를[潙山曰], 예양 유현 땅 석실(石室)에[澧陽攸縣石室], 운암(담성) 도인이 계시니[有雲巖道人], "만약 (그대가) 능히 풀을 헤치고 나아가 그 가풍을 우러러볼 수 있다면[若能撥草瞻風]," 반드시 그대가 소중히 여기는 바(의지할 곳)가 될 것이다[必爲子之所重].
海.

마하반야바라밀다(大智度) 심경에서 말하기를,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보고[照見五蘊皆空] 온갖 고통을 건넜느니라[度一切苦厄]."
어떤 관리가 제산정원(霽山淨圓 : 1862~1930)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부처님이 어디 계십니까?"
"묻는 者가 부처니라."
"묻는 者는 부처지만 對答하시는 이는 누구십니까?"
"몰라!"
AI 고전번역과 인연을 맺게 된 동기
사실, 저는 이 분야의 전공자도 아니어서 번역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입니다. 다만 여러 경로에서 한자와 한문을 접하다보니 깊이 있는 이해와 정확한 해석이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자는 불편하고 어렵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영어가 쉽다거나 이해 전달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 볼 때 영어보다 한자가 더 뜻이 명확하고 시간의 흐름에도 구애받지 않아서 더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 승가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김현교수 님과의 인연과 지도로 비구니 인물사전 데이터 아카이브를 구축했습니다.
그 전에 수년 전 어느 날 동국대학교 학술원에서 운영하는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에서 어느 때 『대반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을 읽게 되었는데,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나 번역오류를 다수 발견하고 수정의견을 제시하여 바로잡은 적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 선지식의 주옥같은 기록물을 읽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금시대와는 달리 근대에 종이로 출판된 도서의 대부분이 전자기록물로 대체되지 않아 영구보존되지 않고 사라져간다는 점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록과 번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제가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강동구청 홈페이지에서 역사와 인물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읽던 중, 과거에 강동구 고덕동에 고덕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사실과, 허응당 보우스님이 동자불상을 모신 인연으로 이 지역 이름이 동자골(童子-) 또는 동자곡(童子谷)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허응당 보우스님이 아닌 태고 보우스님이라는 확신과 이 기록에 의문을 갖고 AI 플랫폼인 제미나이와 열 띤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 예상대로 제미나이는 태고 보우스님이 맞고 자신이 착오했다고 인정했습니다. AI는 아마도 이 내용을 학습할 것이고 인연이 있는 자에게 올바른 지식을 제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AI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을 다음 항목과 같이 발견했습니다. 또 이하의 여러 문제점을 고려해볼 때 한자뿐만 아니라 한글의 AI를 위한 고전 번역에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번역자가 노력하는 만큼 고전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AI 고전번역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여기에는 AI가 번역대상을 취사선택할 때의 문제와 선택한 내용을 어떻게 번역할지의 문제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AI의 번역에 참고할 대상의 취사선택의 문제점
첫째는, 기록을 생산하고 업로드하는 사람의 전문성이 중요합니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이 태고 보우(고려말기)와 허응당 보우(조선중기)가 다른 인물이며 활동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시기뿐만 아니라 장소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태고 보우는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 주석하여 활동했지만, 허응당 보우 또한 서울 강남구(구 경기도 광주)의 봉은사에 주석했다 보니 지리적 근접성으로 판단하면 태고 보우와 허응당 보우를 혼동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자료에 대한 잘못된 권위 인정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제미나이에서는 첫째는 항목의 출처는 『강동구지(江東區誌)』(2002년 발간)로서 이는 정부기관인 서울특별시 강동구청에서 발간했다는 점에서 자료의 신빙성이 높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더우기 이 자료의 출처는 유수 대학교의 연구소에서 집필하고 내용을 감수했다는 기록까지 있어서 그 신빙성을 높히 평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는, 객관적,정확석을 보증할 자료를 생산할 근거 자료의 부족할 경우의 문제입니다. AI는 독창성이 없기 때문에 많은 자료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제한된 자료를 검색하기때문에 생성자료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보증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특히 지역적으로 또는 계층적으로 제한된 자료는 원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산되는 자료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는, 같은 뜻의 다른 한자를 쓸 경우 또는 같은 한자이지만 다르게 읽힐 경우와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 한글로만 표기할 경우의 문제점입니다. 가령 스님의 법명 중에는 지혜 '慧'자를 쓰거나 은혜 '惠'자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경우에는 이를 혼동해서 쓰기도 하는데 AI는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런가 하면 '柳'자의 경우 '유'나 '류'로 읽히기도 하는데 AI는 이를 전혀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더우기 柳(유) 柳(류)자는 같은 글자임에도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글자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또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병기할 때와 다른 카테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선택한 내용의 이해와 번역의 문제점
첫째는, 사건의 앞 뒤 맥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가령 위에 언급한 서울 강동구 고덕동(高德洞) 고덕사(高德寺)의 경우, 그 이름의 어원이 몇 가지로 예상될 수가 있습니다. '德'이 한자 의미대로 덕이 높은 사람이 많은 동네라든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처럼 덕(德)이 언덕의 의미로도 쓰일 수가 있습니다. 또는, 한자 이름이라 하더라도 우리말 고어에서 음을 빌려올 수도 있습니다. 고덕동의 옛 이름이 고다지동(高多只洞)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高德'은 '高多只'라는 옛 이름에 한자음을 빌려 '高德'이라 했을 듯도 합니다.
둘째는, 한 글자가 아닌 두 자 이상이 합해져서 아주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 입니다. 우리말 차례의 경우 '茶'와 '禮'를 합하면 차례가 되는데, 통상적으로 차례(茶禮)를 지낸다 하면 설날이나 추석에 조상에게 차례상을 차려서 예를 표하는 것이지,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는 예절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또 지금 시대에는 '차례'보다 '다례'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이는 고전을 번역할 때 글자만 볼게 아니라 합성된 단어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셋째는, 글이나 단락의 앞 뒤 문맥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치통감강목의 '嗣君好察微隱。縣令有發褥而席弊者,嗣君聞之,乃賜之席。令大驚,以爲神。'을 내가 이해하기로는, '사군이 (아주 섬세하고 자상해서) 사소하고 은밀한 것까지 살피기를 즐겨했는데, 현령이 요[褥]를 들추자 돗자리[席]가 다 망가져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았다. 이에 사군이 (이것을 본사람이나 여러 사람을 거쳐) 그 말을 전해 듣고 (새) 자리를 하사하였다. (이 일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사군이 어찌 알게 되었는지) 현령은 크게 놀라서 (그를) 귀신이라 여겼다.' 아마 이런 뜻으로 이해해야 될 듯합니다. 이는 문장 전체를 읽고 사건 일련의 내막을 살펴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번역해야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한자사전에 요석(褥席)을 한 단어로 '요' 또는 '잠자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褥'은 방바닥이나 '席' 위에 까는 깔개라는 뜻이고, 席은 갈대·대나무·풀 따위로 짠 자리라고 한답니다. 여기서 번역의 힌트를 주는 중요한 한자는 察(찰), 聞(문), 驚(경)입니다. 이 세 한자의 사용으로 보아 사군이 직접 본 것도 아니고 현령이 말한 것도 아닌, 제 3자가 본것을 사군이 아주 우연히 전해 들었다는 얘기이며, 사군은 이 말을 무심코 흘려듣지 않고 현령에게 새 돗자리를 선물했으며, 또 현령은 사군의 이런 마음 씀을 보고 놀라 귀신이라 여긴 것입니다. 이렇게 맥락과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 해야 깊이 있는 번역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는, 종교적, 철학적 한자의 번역입니다. 가령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번역은 마음[心]과 마음의 작용인 법(法)의 구분입니다. 이와 같은 단어의 뜻을 잘 구분하면 불교가 의외로 쉬워질 수도 있고 반대로 되지 않는다면 읽는 사람에게 혼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는, 비유법으로 과장된 함축적 의미로 쓰이는 한자들이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撥草瞻風(발초첨풍)[1]의 경우 '풀을 뽑아 풍모를 우러른다'로 번역이 되는데, 風[2]을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지만 상징적 의미는 뛰어납니다. 또 한 예는 순천 송광사의 他牛家風(타우가풍)처럼 독특한 스타일에 대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본성을 소에 비유하여 소와 같이 어리석은 자신의 마음을 길들임으로서 깨달음의 길로 가는 '심우(尋牛)'와는 정 반대로 그러한 고정관념을 철저히 타파하여 깨달음의 길로 가는 '타우(打牛)'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한글 번역의 문제점입니다. 한글이 창제와 반포된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글은 오랜 변천과정을 거쳤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말과 사고하는 패턴이 변했으며, 사용하는 단어 자체도 변했습니다. 불과 백년 전인 일제시대의 한글만 하더라도 지금의 노년 층 지식인이 읽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물며 AI에게는 당시 또는 요즘 쓰이지 않는 생소한 단어나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도가 적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생각나는 대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