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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 도선사 마애불입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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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서울특별시 강북구 도선사길 278 (우이동 264)</addres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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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도선사 | <p>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삼각산(북한산) 도선사 경내에 위치한 마애관음보살입상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1977년 9월 5일 지정)이다.</p> | ||
<p>전체 높이 8.43m로,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 후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 주장자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도선사 서남쪽 20m의 높은 절벽에 감실(龕室)을 파고 그 안에 새겨 넣었으며, 신체는 원통형을 이룬다.</p> | |||
<p>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마애불 계통을 이어받은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한동안 방치되었으나, 철종 14년(1863)에 나라의 기도도량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1903년 혜명(慧明) 스님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사세를 회복하였다.</p> | |||
<p>신비로운 영험이 있다고 전해져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2009년 6월 4일 문화재 지정 명칭이 '도선사석불'에서 현재의 '도선사 마애불입상'으로 변경되었다.</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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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삼군부 총무당 --> | |||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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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삼군부 총무당</korean> | <korean>삼군부 총무당</korean> | ||
<hanja>三軍府 總武堂</hanja> | <hanja>三軍府 總武堂</hanja> | ||
<english>Chongmudang Hall of Samgunbu | <english>Chongmudang Hall of Samgunbu</engli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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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교로4길 | <alias> | ||
<korean>구포도청사</korean> | |||
<hanja>舊捕盜廳舍</hanj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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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1가 1-13 (삼선교로4길 147, 삼선상상어린이공원 내)</addres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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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tude>37. | <!-- 삼선동 삼선공원(삼선상상어린이공원) 위치 기준 근사 좌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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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5년(1868) 삼군부 청사로 건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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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gn_year>조선 고종 5년</reign_year> | <reign_year>조선 고종 5년</reign_yea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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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조선 | <p>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조선 말기 관아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1978년 12월 18일 지정)이다.</p> | ||
<p>삼군부(三軍府)는 비변사를 폐지하고 설치한 군무 총괄 기관으로 현재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며,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금위영·용호영 등 5개 군문을 지휘하였다. 총무당은 삼군부의 무략(武略)을 총괄하던 중심 청사로서 고종 5년(1868)에 덕의당(德義堂)·청헌당(淸憲堂)과 함께 광화문 남쪽, 현재의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건립되었다.</p> | |||
<p>삼군부는 고종 17년(1880)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설치되면서 폐지되었고, 총무당은 1930년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되었다. 이후 1942년부터 경기도 공무원 연수장, 서울시 직업훈련원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79년 대규모 복원공사를 거쳐 원형을 회복하였다.</p> | |||
<p>건물은 세벌대 화강석 장대석 기단 위에 원기둥을 세운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평면 규모는 정면 7칸·측면 4칸이다. 공포는 2익공(二翼工) 양식이며, 중앙 어칸(御間) 창방에는 신관호(申觀浩, 뒷날 신헌申櫶으로 개명)가 쓴 '總武堂' 현판이 걸려 있고, 정면 8개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달려 있다.</p> | |||
<p>총무당은 청헌당(현 육군사관학교 경내)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배치 및 건물 형태를 살필 수 있는 현존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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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6일 (월) 02: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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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서울 도선사 마애불입상</korean>
<hanja>서울 道詵寺 磨崖佛立像</ha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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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a>道詵寺 石佛</ha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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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삼각산(북한산) 도선사 경내에 위치한 마애관음보살입상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1977년 9월 5일 지정)이다.
전체 높이 8.43m로,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 후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 주장자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도선사 서남쪽 20m의 높은 절벽에 감실(龕室)을 파고 그 안에 새겨 넣었으며, 신체는 원통형을 이룬다.
불상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마애불 계통을 이어받은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한동안 방치되었으나, 철종 14년(1863)에 나라의 기도도량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1903년 혜명(慧明) 스님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사세를 회복하였다.
신비로운 영험이 있다고 전해져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2009년 6월 4일 문화재 지정 명칭이 '도선사석불'에서 현재의 '도선사 마애불입상'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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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삼군부 총무당</korean>
<hanja>三軍府 總武堂</ha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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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구포도청사</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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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1가 1-13 (삼선교로4길 147, 삼선상상어린이공원 내)</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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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조선 말기 관아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1978년 12월 18일 지정)이다.
삼군부(三軍府)는 비변사를 폐지하고 설치한 군무 총괄 기관으로 현재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며,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금위영·용호영 등 5개 군문을 지휘하였다. 총무당은 삼군부의 무략(武略)을 총괄하던 중심 청사로서 고종 5년(1868)에 덕의당(德義堂)·청헌당(淸憲堂)과 함께 광화문 남쪽, 현재의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건립되었다.
삼군부는 고종 17년(1880)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설치되면서 폐지되었고, 총무당은 1930년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되었다. 이후 1942년부터 경기도 공무원 연수장, 서울시 직업훈련원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79년 대규모 복원공사를 거쳐 원형을 회복하였다.
건물은 세벌대 화강석 장대석 기단 위에 원기둥을 세운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평면 규모는 정면 7칸·측면 4칸이다. 공포는 2익공(二翼工) 양식이며, 중앙 어칸(御間) 창방에는 신관호(申觀浩, 뒷날 신헌申櫶으로 개명)가 쓴 '總武堂' 현판이 걸려 있고, 정면 8개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달려 있다.
총무당은 청헌당(현 육군사관학교 경내)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배치 및 건물 형태를 살필 수 있는 현존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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