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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6일 (월) 06: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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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id="서울_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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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성균관</korean>
<hanja>成均館</hanja>
<english>Sungkyunkwan</english>
</name>
<alias>
<korean>서울 문묘와 성균관</korean>
<hanja>文廟與成均館</hanja>
<english>Seoul Munmyo and Sungkyunkwan</english>
</alias>
<address>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31 (명륜동)</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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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tude>37.5894</latitude>
<longitude>126.9921</longitude>
<altitude>60</al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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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ablished>
<year>1398</year>
<reign_year>조선 태조 7년</reign_year>
</established>
<description>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으로 유학 교육과 인재 양성을 담당하던 국립 교육기관이다. 고려시대 국자감의 전통을 계승하여 조선 태조 7년(1398)에 창건되었다. 성균관은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묘와 유생들이 학문을 배우는 강학 공간으로 구성되며,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 형식을 따른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으며, 현재는 서울 문묘와 성균관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과거제와 관료 양성의 중심 기관으로서 한국 유교 문화와 교육사의 핵심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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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id="서울_황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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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황학정</korean>
<hanja>黃鶴亭</hanja>
<english>Hwanghakjeong Pavilion</english>
</name>
<address>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 (사직동)</address>
<coordinates>
<latitude>37.5759</latitude>
<longitude>126.9706</longitude>
<altitude>45</al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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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ablished>
<year>1899</year>
<reign_year>대한제국 고종 광무 3년</reign_year>
</established>
<description>
황학정은 대한제국 고종이 국궁 장려를 위해 1899년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세운 활쏘기 연습장(사정)이다. 갑오개혁 이후 군대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사정이 사라지자, 고종이 전통 궁술을 유지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1922년 일제강점기 경희궁 철거 과정에서 현재의 사직동 자리로 이전되었으며, 조선시대 서촌 지역의 대표적인 활터 전통을 이어받았다. 현재까지도 국궁 행사와 활쏘기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 궁술 문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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