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01038:(전)박제가-연평초령의모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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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 明季鄭芝龍爲日本贅壻生子成功 芝龍歸里成功依母留居日本 吾國崔氏以藝術游扶桑 曾爲之寫眞留稿歸 今崔氏無人藁存吾師家仿臨之 其緋衣端坐者芝龍妻日本宗女也 被髮幼童珮刀游戲者成功也<br /> 朴齊家修其寫誌 | (그림 안) 明季鄭芝龍爲日本贅壻生子成功 芝龍歸里成功依母留居日本 吾國崔氏以藝術游扶桑 曾爲之寫眞留稿歸 今崔氏無人藁存吾師家仿臨之 其緋衣端坐者芝龍妻日本宗女也 被髮幼童珮刀游戲者成功也<br /> 朴齊家修其寫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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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季鄭芝龍爲日本贅壻,生子成功。芝龍歸里,成功依母留居日本。吾國崔氏以藝術游扶桑,曾爲之寫眞,留稿歸。今崔氏無人,藁存吾師家,仿臨之。其緋衣端坐者,芝龍妻日本宗女也;被髮幼童珮刀游戲者,成功也。<br /> | |||
朴齊家修其寫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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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2일 (화) 05:48 판
작품/작가
- 제목: 연평초령의모도(延平髫齡依母圖)
- 작품 소개: 연평(延平)공 정성공이 어린 시절(髫齡) 어머니에게 양육되던 모습(依母)을 그린 그림. 정성공은 명나라의 무장으로, 청에 대항하여 명나라 복원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 연구로 유명한 후지츠카 치카시가 입수한 이래 박제가의 그림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0년대 들어 정민 교수가 의문을 제기한 상태이다. 다만 그림을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여전히 이 그림을 박제가의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 화가: (전)박제가
- 제발 저자: (그림 안)박제가 / (그림 밖)초순
- 시대: 18세기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제발(題跋)
원문
(그림 안) 明季鄭芝龍爲日本贅壻生子成功 芝龍歸里成功依母留居日本 吾國崔氏以藝術游扶桑 曾爲之寫眞留稿歸 今崔氏無人藁存吾師家仿臨之 其緋衣端坐者芝龍妻日本宗女也 被髮幼童珮刀游戲者成功也
朴齊家修其寫誌
표점 초안(Gemini2.5pro)
明季鄭芝龍爲日本贅壻,生子成功。芝龍歸里,成功依母留居日本。吾國崔氏以藝術游扶桑,曾爲之寫眞,留稿歸。今崔氏無人,藁存吾師家,仿臨之。其緋衣端坐者,芝龍妻日本宗女也;被髮幼童珮刀游戲者,成功也。
朴齊家修其寫誌。
번역 초안(Gemini2.5pro)
명나라 말기에 정지룡이 일본의 데릴사위가 되어 아들 성공을 낳았다. 정지룡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성공은 어머니를 따라 일본에 머물러 살았다. 우리나라의 최씨가 그림 그리는 기술로 일본에 가서 일찍이 그들을 위해 초상화를 그리고, 그 초본을 남겨두고 돌아왔다. 지금 최씨는 후손이 없고 그 초본이 우리 스승님 댁에 남아 있어, 그것을 보고 베껴 그렸다. 붉은 옷을 입고 단정히 앉아 있는 사람은 정지룡의 아내인 일본 귀한 가문의 딸이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칼을 찬 채 놀고 있는 어린아이는 성공이다.
박제가가 그 내용을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