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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2일 (금) 00:26 판
System Prompt
당신은 한문 경전(經典)의 경문(經文)과 복수의 주석문(注釋文)을 분석하여,
아래의 규칙과 XML 스키마에 따라 정확하고 일관된 XML 결과물을 생성하는 전문 보조자입니다.
## 역할
- 각 주석가의 관점을 충실히 반영하여 경문을 번역합니다.
- 핵심 용어에 대한 주석가별 해석 차이를 비교·분석합니다.
- 주석가들의 전체적인 해석 관점의 차이를 요약합니다.
## 처리 규칙
1. Input XML의 <text_unit id="..."> 값을 Output의 text_unit id 속성에 그대로 사용합니다.
2. Input XML의 <commentary commentator="..."> 값을 Output의 according_to 속성에 그대로 사용합니다.
3. 번역은 주석가의 해석을 반영하되, 현대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합니다.
4. 용어사전(glossary)에는 경문의 핵심 개념어를 선별하여 수록하고,
각 주석가의 해석을 meaning(핵심 의미)과 context(해석 맥락)로 구분합니다.
5. comparison_highlight에는 주석가들의 해석 관점 차이를
dimension(비교 차원) 단위로 구분하여 서술합니다.
6. 출력은 반드시 아래 XML 스키마를 완전히 준수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설명, 마크다운, 코드 블록 없이 XML만 출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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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utput XML 스키마
<text_unit id="{Input text_unit의 id}">
<glossary>
<term name="{한문 용어}">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commentator}">
<meaning>{핵심 의미 - 1~2문장}</meaning>
<context>{해석 맥락 - 1~2문장}</context>
</interpretation>
</term>
</glossary>
<translation>
<version lang="KOR" according_to="{commentator}">
{해당 주석가의 해석을 반영한 경문 전체 번역}
</version>
</translation>
<comparison_highlight>
<dimension name="{비교 차원명}">
{해당 차원에서의 주석가별 해석 차이를 서술 - 2~5문장}
</dimension>
</comparison_highlight>
</text_unit>
User Prompt
아래 Input XML을 분석하여, System Prompt의 스키마에 따라 XML 결과물을 생성해 주세요. ## Input Xml <text_unit id="논어해석-001-001"> <hanmun_text punctuation_scheme="standard">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 <commentary commentator="朱熹"> <p>說、悅同。學之為言效也。人性皆善,而覺有先後,後覺者必效先覺之所為,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p> <p>習,鳥數飛也。學之不已,如鳥數飛也。說,喜意也。既學而又時時習之,則所學者熟,而中心喜說,其進自不能已矣。程子曰:「習,重習也。時復思繹,浹洽於中,則說也。」又曰:「學者,將以行之也。時習之,則所學者在我,故說。」謝氏曰:「時習者,無時而不習。坐如尸,坐時習也;立如齊,立時習也。」</p> </commentary> <commentary commentator="김현">정약용은 이 구절에 대해, 學,受敎也。習,肄業也。時習,以時習之也。說,心快也。라고 하고, 學所以知也,習所以行也,學而時習者,知行兼進也。 後世之學,學而不習,所以無可悅也。라고 하였다. 즉 배움은 실천으로 이어질 때에 비로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commentary>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commentary commentator="朱熹"> 樂,音洛。朋,同類也。自遠方來,則近者可知。程子曰:「以善及人,而信從者眾,故可樂。」又曰:「說在心,樂主發散在外。」 </commentary> <commentary commentator="김현">벗(朋)이라 함은 이해 관계나 권력의 예속 없이 자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가 나를 찾을 때 즐겁지 않다면 굳이 먼곳에서부터 오겠는가? 學而時習하는 나의 하루 하루가 기쁜 삶이니 벗이 그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오고, 그래서 나와 벗의 삶은 더욱 즐겁다. </commentary>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commentary commentator="朱熹"> <p>慍,紆問反。慍,含怒意。 </p> <p>君子,成德之名。</p> <p>尹氏曰:「學在己,知不知在人,何慍之有。」 程子曰:「雖樂於及人,不見是而無悶,乃所謂君子。」 愚謂及人而樂者順而易,不知而不慍者逆而難,故惟成德者能之。 然德之所以成,亦曰學之正、習之熟、說之深,而不已焉耳。 程子曰:「樂由說而後得,非樂不足以語君子。」</p> </commentary> <commentary commentator="김현">배운 것을 실천하며 살아가니 기쁨이 있고, 벗이 찾아와 그 기쁨을 함께 하니 삶이 즐겁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 주지 않는 것에 전혀 마음 쓸 일 없으니 이 정도면 군자라 할 만하지 않은가?</commentary> </hanmun_text> </text_unit>
Output Xml
<text_unit id="논어해석-001-001">
<glossary>
<term name="學">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朱熹">
<meaning>배움은 본래 '효(效)', 즉 모방하는 것을 뜻한다.</meaning>
<context>인간의 본성은 모두 선하나 깨달음에 선후가 있으므로, 후각자는 선각자의 행위를 본받아 선을 밝히고 본래의 선한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context>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김현">
<meaning>배움은 가르침을 받는 것(受敎)이며, 앎을 얻는 것이다.</meaning>
<context>정약용의 견해를 따라, 배움은 지(知)를 추구하는 것이며 습(習)과 결합하여 지행겸진(知行兼進)을 이루어야 한다.</context>
</interpretation>
</term>
<term name="習">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朱熹">
<meaning>습은 새가 거듭 날개짓하는 것처럼 반복하여 익히는 것이다.</meaning>
<context>배운 것을 그치지 않고 때때로 익히면 학문이 익숙해져서 마음속에서 기쁨이 생기고 그 진보를 스스로 멈출 수 없게 된다. 정자는 "때때로 다시 생각하고 음미하여 가슴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 했다.</context>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김현">
<meaning>습은 업(業)을 익히는 것이며, 실천하는 행(行)을 의미한다.</meaning>
<context>배움은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기쁨을 줄 수 있다. 후세의 학문은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기뻐할 것이 없다.</context>
</interpretation>
</term>
<term name="說">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朱熹">
<meaning>설(說)은 열(悅)과 같으며, 기쁨의 뜻이다.</meaning>
<context>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배운 것이 익숙해져 마음속에서 기쁨이 생긴다. 정자는 "마음속에 있는 기쁨"이라 했다.</context>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김현">
<meaning>설은 마음이 유쾌한 것(心快)이다.</meaning>
<context>배움이 실천(시습)으로 이어질 때 생기는 마음의 기쁨으로, 일상의 매 순간이 기쁜 삶을 의미한다.</context>
</interpretation>
</term>
<term name="朋">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朱熹">
<meaning>붕(朋)은 같은 부류의 사람을 뜻한다.</meaning>
<context>선으로써 사람들에게 미치니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 즐거움이 된다.</context>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김현">
<meaning>벗은 이해관계나 권력의 예속 없이 자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meaning>
<context>학이시습하는 나의 기쁜 삶에 벗이 그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 찾아오며, 이로써 나와 벗의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context>
</interpretation>
</term>
<term name="樂">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朱熹">
<meaning>낙(樂)은 즐거움이며, 기쁨이 밖으로 발산되는 것이다.</meaning>
<context>정자는 "설(說)은 마음에 있고, 낙(樂)은 밖으로 발산되는 것을 주로 한다"고 하여 내면의 기쁨(說)과 외적 즐거움(樂)을 구분했다.</context>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김현">
<meaning>즐거움은 벗과 기쁨을 함께할 때 얻는 것이다.</meaning>
<context>나의 기쁜 삶에 벗이 찾아와 그 기쁨을 나눌 때, 개인의 기쁨(說)이 관계 속의 즐거움(樂)으로 확장된다.</context>
</interpretation>
</term>
<term name="君子">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朱熹">
<meaning>군자는 덕을 이룬 사람을 일컫는 명칭이다.</meaning>
<context>배움을 바르게 하고, 익힘이 익숙하며, 기쁨이 깊어 그치지 않음으로써 덕이 완성된다. 정자는 "즐거움은 기쁨에서 나온 후에 얻어지니, 즐거움이 아니면 군자를 말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context>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lang="KOR" according_to="김현">
<meaning>군자는 배움의 실천으로 기쁨을 얻고, 벗과 즐거움을 나누며, 세상의 인정에 초연한 사람이다.</meaning>
<context>배운 것을 실천하며 기쁘고, 벗이 찾아와 즐거우며,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 쓸 일 없는 삶의 경지를 이른 사람이 군자이다.</context>
</interpretation>
</term>
</glossary>
<translation>
<version lang="KOR" according_to="朱熹">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같은 뜻을 가진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version>
<version lang="KOR" according_to="김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운 것을 때에 맞춰 실천하니 마음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와 이 기쁨을 함께 하니 즐겁지 아니한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아도 전혀 언짢아하지 않으니, 이 정도면 군자라 할 만하지 아니한가?"
</version>
</translation>
<comparison_highlight>
<dimension name="배움과 익힘의 관계">
朱熹는 학(學)을 선각자를 모방하여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고, 습(習)을 반복 연습을 통한 내면화로 이해한다. 반면 김현(정약용 해석 인용)은 학을 지(知)의 영역, 습을 행(行)의 영역으로 명확히 구분하며, 배움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기쁨이 없다고 강조한다. 朱熹가 학습의 심리적 과정과 내면의 변화에 주목한다면, 김현은 지행합일의 실천적 측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dimension>
<dimension name="說과 樂의 구별">
朱熹는 정자의 견해를 인용하여 설(說)을 내면의 기쁨으로, 낙(樂)을 외적으로 발산되는 즐거움으로 구분한다. 이는 개인의 내적 수양에서 타인과의 관계로 나아가는 단계적 진보를 나타낸다. 반면 김현은 설과 낙을 단계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학이시습의 기쁜 삶이 벗과의 만남을 통해 즐거움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연속적 과정으로 본다. 朱熹가 개념적 구분을 중시한다면, 김현은 삶의 연속성과 자연스러운 전개를 강조한다.
</dimension>
<dimension name="朋의 의미와 관계의 성격">
朱熹는 붕(朋)을 "같은 부류"로 해석하고, "선으로써 사람들에게 미쳐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정자의 말을 인용하여 도덕적 감화의 결과로 본다. 이는 군자의 덕이 타인을 이끄는 수직적·교화적 관계를 암시한다. 반면 김현은 벗을 "이해관계나 권력의 예속 없이 자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며,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또한 벗이 나의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 온다는 표현에서 상호적이고 평등한 기쁨의 공유를 나타낸다.
</dimension>
<dimension name="君子의 경지와 도달 방식">
朱熹는 군자를 "성덕지명(成德之名)", 즉 덕을 완성한 사람으로 보며, 학지정(學之正), 습지숙(習之熟), 설지심(說之深)의 체계적 수양 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경지로 제시한다. 특히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은 역(逆)이요 어려운 것이므로 오직 성덕자만이 할 수 있다"고 하여 높은 경지를 강조한다. 반면 김현은 군자를 학이시습의 기쁨, 벗과의 즐거움, 세상의 인정에 초연함이라는 세 가지 구체적 삶의 모습으로 제시하며, "이 정도면 군자라 할 만하지 않은가?"라는 수사적 질문을 통해 보다 접근 가능한 삶의 경지로 표현한다.
</dimension>
<dimension name="전체적 해석 관점">
朱熹의 해석은 성리학적 수양론의 틀 안에서 본성 회복, 내면 수양, 단계적 진보, 덕의 완성이라는 체계적 구조를 보여준다. 程子와 尹氏 등의 견해를 인용하며 이론적 깊이를 더하고, 개념들 간의 논리적 관계를 치밀하게 구성한다. 반면 김현의 해석은 정약용의 실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지행합일의 실천, 자발적이고 평등한 인간관계, 세속적 성공에 초연한 삶의 태도를 강조한다. 철학적 체계보다는 일상적 삶 속에서 구현 가능한 구체적 실천과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기쁨에 초점을 둔다.
</dimension>
</comparison_highlight>
</text_u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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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put Xslt
Output Xslt
☞ T26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