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01029:대승기신론2-초설인연분.xml
<text_unit id="대승기신론2-초설인연분"><hanmun_text punctuation_scheme="raw"> 初說因緣分 問曰。有何因緣而造此論。答曰。是因 緣有八種。云何爲八。一者因緣總相。 所謂爲令衆生離一切苦。得究竟樂。非 求世間名利恭敬故。二者爲欲解釋如 來根本之義。令諸衆生正解不謬故。三 者爲令善根成熟衆生。於摩訶衍法堪 任不退信故。四者爲令善根微少衆生 修習信心故。五者爲示方便消惡業障。 善護其心。遠離癡慢。出邪網故。六者 爲示修習止觀。對治凡夫二乘心過故。 七者爲示專念方便。生於佛前。必定不 退信心故。八者爲示利益勸修行故。有 如是等因緣。所以造論。 問曰。脩多羅中具有此法。何須重說。 答曰。脩多羅中雖有此法。以衆生根行 不等。受解緣別。所謂如來在世。衆生 利根。能說之人色心業勝。圓音一演。 異類等解。則不須論。若如來滅後。或 有衆生能以自力廣聞而取解者。或有 衆生亦以自力少聞而多解者。或有衆 生無自心力。因於廣論而得解者。亦有 衆生復以廣論文多爲煩。心樂總持少 文而攝多義能取解者。如是此論。爲欲 總攝如來廣大深法無邊義故。應說此 論。 已說因緣分。次說立義分。摩訶衍者。總 說有二種。云何爲二。一者法。二者義。 所言法者。謂衆生心。是心則攝一切世 間法出世間法。依於此心顯示摩訶衍 義。何以故。是心眞如相。卽示摩訶衍 體故。是心生滅因緣相。能示摩訶衍自 體相用故。所言義者。則有三種。云何爲 三。一者體大。謂一切法眞如平等不增 減故。二者相大。謂如來藏具足無量性 功德故。三者用大。能生一切世間出世 間善因果故。一切諸佛本所乘故。一切 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 已說立義分。次說解釋分。解釋分有三 種。云何爲三。一者顯示正義。二者對 治邪執。三者分別發趣道相。 顯示正義者。依一心法有二種門。云何 爲二。一者心眞如門。二者心生滅門。 是二種門皆各總攝一切法。此義云何。 以是二門不相離故。 </hanmun_text><translation lang="KOR" status="source"/></text_unit> <hanmun_text punctuation_scheme="standard" model="Gemini2.5pro"> 初說因緣分。 問曰:有何因緣而造此論?答曰:是因緣有八種。云何爲八?一者,因緣總相,所謂爲令衆生離一切苦,得究竟樂,非求世間名利恭敬故。二者,爲欲解釋如來根本之義,令諸衆生正解不謬故。三者,爲令善根成熟衆生,於摩訶衍法堪任不退信故。四者,爲令善根微少衆生,修習信心故。五者,爲示方便消惡業障,善護其心,遠離癡慢,出邪網故。六者,爲示修習止觀,對治凡夫、二乘心過故。七者,爲示專念方便,生於佛前,必定不退信心故。八者,爲示利益勸修行故。有如是等因緣,所以造論。 問曰:脩多羅中具有此法,何須重說? 答曰:脩多羅中雖有此法,以衆生根行不等,受解緣別。所謂如來在世,衆生利根,能說之人色心業勝,圓音一演,異類等解,則不須論。若如來滅後,或有衆生能以自力廣聞而取解者;或有衆生亦以自力少聞而多解者;或有衆生無自心力,因於廣論而得解者;亦有衆生復以廣論文多爲煩,心樂總持少文而攝多義能取解者。如是此論,爲欲總攝如來廣大深法無邊義故,應說此論。 已說因緣分,次說立義分。摩訶衍者,總說有二種。云何爲二?一者法,二者義。 所言法者,謂衆生心。是心則攝一切世間法、出世間法。依於此心顯示摩訶衍義。何以故?是心眞如相,即示摩訶衍體故;是心生滅因緣相,能示摩訶衍自體相用故。所言義者,則有三種。云何爲三?一者體大,謂一切法眞如平等不增減故;二者相大,謂如來藏具足無量性功德故;三者用大,能生一切世間、出世間善因果故。一切諸佛本所乘故,一切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 已說立義分,次說解釋分。解釋分有三種。云何爲三?一者顯示正義,二者對治邪執,三者分別發趣道相。 顯示正義者,依一心法有二種門。云何爲二?一者心眞如門,二者心生滅門。是二種門皆各總攝一切法。此義云何?以是二門不相離故。 </hanmun_text> <glossary status="draft" model="Gemini2.5pro">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因緣</hanmun> <korean>인연</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어떤 결과가 생겨나는 직접적 원인(因)과 간접적 조건(緣)을 아울러 이르는 불교 용어.</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이 논을 저술하게 된 8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云何</hanmun> <korean>운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어찌, 어떻게, 무엇. 의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주로 구체적인 내용이나 항목을 물을 때 사용된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云何爲八(무엇이 여덟 가지인가?)"와 같이 목록을 제시하기 전에 질문하는 형식으로 여러 번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衆生</hanmun> <korean>중생</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윤회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definition> <sense_note>이 논은 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밝히고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究竟樂</hanmun> <korean>구경락</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궁극적인 즐거움. 불교에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통해 얻는 열반(涅槃)의 즐거움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세속의 명예나 이익과 대비되는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故</hanmun> <korean>고</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때문에', '~까닭에'. 문장이나 구절의 끝에 위치하여 앞선 내용이 이유임을 나타낸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의 전반에 걸쳐 어떤 행위의 목적이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빈번하게 사용된다. (예: 非求世間名利恭敬故)</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如來</hanmun> <korean>여래</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부처를 가리키는 열 가지 명호 중 하나로, '진리로부터 온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根本之義)을 설명하는 주체로 언급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善根</hanmun> <korean>선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선을 낳는 뿌리.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깨달음의 기반이 되는 선한 성품이나 공덕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중생의 근기(根機)를 선근이 성숙한 자와 미미한 자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摩訶衍</hanmun> <korean>마하연</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산스크리트어 '마하야나(Mahāyāna)'의 음역으로, '큰 수레'라는 뜻. 소수의 깨달음만이 아닌 일체 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하는 대승 불교를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이 논의 핵심 주제이며, 그 의미를 법(法)과 의(義)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業障</hanmun> <korean>업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과거에 지은 악한 행위(業)가 현재의 수행이나 깨달음에 장애(障)가 되는 것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이 논을 짓는 목적 중 하나로 악한 업장을 소멸시키는 방편을 보여주기 위함이 언급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止觀</hanmun> <korean>지관</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 '지(止)'는 마음의 동요를 멈추고 고요히 하는 것이고, '관(觀)'은 그 고요한 마음으로 지혜를 통해 사물의 실상을 관찰하는 것이다.</definition> <sense_note>범부와 이승(二乘)의 잘못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수행법으로 제시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二乘</hanmun> <korean>이승</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두 가지 수레.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성문(聲聞)과 스승 없이 홀로 깨닫는 연각(緣覺)을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들이 자신의 해탈만을 구한다고 하여 보살과 구별한다.</definition> <sense_note>범부와 함께 마음의 허물을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언급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脩多羅</hanmun> <korean>수다라</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산스크리트어 '수트라(sūtra)'의 음역으로, 부처가 설한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經典)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이미 경전에 가르침이 있는데 왜 이 논을 새로 짓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언급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則</hanmun> <korean>즉</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하면 곧', '~하면 바로'. 앞선 조건에 대한 당연한 결과를 나타내는 접속사.</definition> <sense_note>'圓音一演,異類等解,則不須論(원음이 한번 울려 퍼지면 다른 종류의 중생들도 똑같이 이해하니, 곧 논이 필요 없다)'에서 조건과 결과의 관계를 보여준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者</hanmun> <korean>자</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앞선 구절이나 단어를 받아 '~라는 것은', '~하는 사람은', '~하는 것은' 등으로 해석되는 어조사. 주어를 만들거나 화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definition> <sense_note>'摩訶衍者(마하연이라는 것은)', '所言法者(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등에서 주제를 제시하는 용법으로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一心</hanmun> <korean>일심</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모든 법의 근원이 되는 하나의 마음. 중생심(衆生心)을 가리키며, 이 마음이 곧 진여(眞如)의 측면과 생멸(生滅)의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고 본다.</definition> <sense_note>대승기신론의 핵심 사상으로, 이 글에서는 마하연의 법(法)이 바로 중생심이라고 정의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何以故</hanmun> <korean>하이고</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무슨 까닭인가? 왜냐하면. 앞선 주장에 대한 이유를 묻거나,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유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definition> <sense_note>이 글에서는 '왜 중생심에 의지하여 마하연의 뜻을 드러내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眞如</hanmun> <korean>진여</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있는 그대로의 참된 모습. 모든 사물의 본질로서, 불변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적인 진리를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중생심의 본질적인 측면(是心眞如相)으로, 마하연의 본체(體)를 보여준다고 설명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生滅</hanmun> <korean>생멸</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생겨나고 사라짐. 인연에 따라 현상이 나타나고 소멸하는 것을 의미하며, 변화하는 현실 세계의 모습을 가리킨다.</definition> <sense_note>중생심의 현상적인 측면(是心生滅因緣相)으로, 마하연의 체(體)·상(相)·용(用)을 보여준다고 설명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體大</hanmun> <korean>체대</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본체의 위대함. 마하연의 세 가지 위대함(三大) 중 첫 번째로, 모든 법의 본체인 진여(眞如)가 평등하여 늘거나 줄지 않음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마하연의 '의(義)'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로 제시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相大</hanmun> <korean>상대</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속성의 위대함. 마하연의 세 가지 위대함(三大) 중 두 번째로, 본체인 여래장(如來藏)이 본래 무한한 공덕(性功德)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마하연의 '의(義)'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로 제시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用大</hanmun> <korean>용대</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작용의 위대함. 마하연의 세 가지 위대함(三大) 중 세 번째로,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한 원인과 결과를 낳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마하연의 '의(義)'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로 제시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如來藏</hanmun> <korean>여래장</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모든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본성. 번뇌에 덮여 있지만 수행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깨달음의 가능성을 의미한다.</definition> <sense_note>마하연의 '상대(相大)'를 설명하며, 여래장이 무한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고 언급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邪執</hanmun> <korean>사집</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그릇된 견해에 대한 집착. 진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을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definition> <sense_note>이 논의 '해석분'에서 다루는 세 가지 내용 중 하나로, 그릇된 집착을 바로잡는 것(對治邪執)이 포함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心眞如門</hanmun> <korean>심진여문</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마음의 진여 측면으로 들어가는 문. 일심(一心)의 본체가 평등하고 불변하는 진여 그 자체임을 관찰하는 관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일심법을 설명하는 두 가지 문(門) 중 하나로, 생멸문과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설명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心生滅門</hanmun> <korean>심생멸문</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마음의 생멸 측면으로 들어가는 문. 일심(一心)이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관찰하는 관점이다.</definition> <sense_note>일심법을 설명하는 두 가지 문(門) 중 하나로, 진여문과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설명된다.</sense_note> </sense> </term> </glossary> <text_unit id="대승기신론2-초설인연분"> <translation lang="KOR" status="draft" model="Gemini2.5pro"> 첫 번째, 인연분(因緣分)을 설하다. 묻기를, "어떤 인연으로 이 논을 지었는가?" 하니, 답하기를, "그 인연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무엇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인연의 전체적인 모습이니,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여의고 궁극적인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함이지, 세간의 명예와 이익, 공경을 구하기 때문이 아니다. 둘째는 여래의 근본적인 뜻을 해석하여 모든 중생이 바르게 이해하여 그릇됨이 없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근이 성숙한 중생으로 하여금 마하연의 법에 대해 능히 물러나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넷째는 선근이 미미한 중생으로 하여금 신심을 닦아 익히게 하기 위함이다. 다섯째는 방편을 보여 악한 업장을 소멸시키고 그 마음을 잘 보호하여 어리석음과 교만을 멀리 여의고 그릇된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여섯째는 지관 수행법을 보여 범부와 이승의 마음의 허물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일곱째는 오로지 염불하는 방편을 보여 부처님 앞에 태어나 반드시 물러나지 않는 신심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여덟째는 이익을 보여 수행을 권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인연들이 있으므로 이 논을 지었다." 묻기를, "수다라에 이 법이 이미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하여 다시 설해야 하는가?" 답하기를, "수다라에 비록 이 법이 있지만, 중생들의 근기와 수행이 같지 않고 가르침을 받아 이해하는 인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중생들의 근기가 뛰어나고, 설법하는 분의 신심과 업이 수승하여 원만한 소리가 한번 울려 퍼지면 다른 종류의 중생들도 똑같이 이해하니, 곧 논이 필요 없다. 만약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어떤 중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널리 듣고서 이해하는 이가 있고, 어떤 중생은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 적게 듣고서 많이 이해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중생은 스스로 마음에 힘이 없어 방대한 논서에 의지하여 이해를 얻는 이도 있고, 또한 어떤 중생은 다시 방대한 논서의 글이 많아 번거롭다고 여겨, 마음으로 간략한 글에 담긴 많은 뜻을 총괄적으로 지니고서 이해하기를 즐기는 이도 있다. 이와 같으므로 이 논은 여래의 광대하고 심오한 법의 무한한 뜻을 총괄적으로 아우르고자 하기에, 마땅히 이 논을 설해야 한다." 인연분을 이미 설하였으니, 다음으로 입의분(立義分)을 설한다. 마하연이라는 것은, 총괄하여 말하면 두 종류가 있다.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법(法)이고, 둘째는 의(義)이다.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중생의 마음을 이른다. 이 마음은 곧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모두 포함한다. 이 마음에 의지하여 마하연의 뜻을 드러낸다. 무슨 까닭인가? 이 마음의 진여의 모습이 곧 마하연의 본체(體)를 보여주기 때문이며, 이 마음의 생멸하는 인연의 모습이 능히 마하연 자체의 체(體)·상(相)·용(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義)라고 말하는 것에는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체대(體大)이니, 모든 법의 진여가 평등하여 늘거나 줄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대(相大)이니, 여래장이 무한한 본성의 공덕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용대(用大)이니, 능히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선한 원인과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본래 타신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이 다 이 법을 타고 여래의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입의분(立義分)을 이미 설하였으니, 다음으로 해석분(解釋分)을 설한다. 해석분에는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바른 뜻을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릇된 집착을 다스리는 것이며, 셋째는 도에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하는 것이다. 바른 뜻을 드러낸다는 것은, 일심(一心)의 법에 의지하여 두 가지 문이 있음을 말한다.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마음의 진여문(心眞如門)이고, 둘째는 마음의 생멸문(心生滅門)이다. 이 두 가지 문은 모두 각각 일체의 법을 총괄하여 포함한다. 이 뜻은 무엇인가? 이 두 문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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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_u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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