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01008:소식-후기국부병서.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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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隨生自言常食杞菊,及夏五月,枝葉老硬,氣味苦澀,猶食不已,因作賦以自廣。始余嘗疑之,以爲士不遇,窮約可也,至於飢餓嚼齧草木,則過矣。而余仕宦十有九年,家日益貧,衣食之奉,殆不如昔者。及移守膠西,意且一飽,而齋厨索然,不堪其憂。日與通守劉君廷式,循古城廢圃,求杞菊食之,捫腹而笑,然後知天隨生之言可信不謬。作後杞菊賦以自嘲,且解之云:
“吁嗟先生,誰使汝坐堂上稱太守?前賓客之造請,後掾屬之趨走。朝衙達午,夕坐過酉。曽盃酒之不設,攬草木以誑口。對案嚬蹙,舉箸噎嘔。昔陰將軍設麥飯與葱葉,井丹推去而不齅。怪先生之眷眷,豈故山之無有。”
先生听然而笑曰:“人生一世,如屈伸肘。何者爲貧?何者爲富?何者爲美?何者爲陋?或糠覈而匏肥,所粱肉而黑痩。何侯方丈,庾郎三九。較豐約於夢寐,卒同歸於一朽。吾方以杞爲糧,以菊爲糗。春食苗,夏食葉,秋食花實,而冬食根,庶幾乎西河、南陽之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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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mun_text punctuation_scheme="standard" model="Gemini3.1pro">
天隨生自言常食杞菊,及夏五月,枝葉老硬,氣味苦澀,猶食不已,因作賦以自廣。始余嘗疑之,以爲士不遇,窮約可也,至於飢餓嚼齧草木,則過矣。而余仕宦十有九年,家日益貧,衣食之奉,殆不如昔者。及移守膠西,意且一飽,而齋厨索然,不堪其憂。日與通守劉君廷式,循古城廢圃,求杞菊食之,捫腹而笑,然後知天隨生之言可信不謬。作《後杞菊賦》以自嘲,且解之云:
「吁嗟先生,誰使汝坐堂上稱太守?前賓客之造請,後掾屬之趨走。朝衙達午,夕坐過酉。曾盃酒之不設,攬草木以誑口。對案嚬蹙,舉箸噎嘔。昔陰將軍設麥飯與葱葉,井丹推去而不齅。怪先生之眷眷,豈故山之無有?」
先生听然而笑曰:「人生一世,如屈伸肘。何者爲貧?何者爲富?何者爲美?何者爲陋?或糠覈而匏肥,或粱肉而黑瘦。何侯方丈,庾郎三九。較豐約於夢寐,卒同歸於一朽。吾方以杞爲糧,以菊爲糗。春食苗,夏食葉,秋食花實,而冬食根,庶幾乎西河、南陽之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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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ssary status="final" model="Gemini3.1pro">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天隨生</hanmun>
			<korean>천수생</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당나라 후기의 시인 육구몽(陸龜蒙)의 호. 자연에 은거하며 청빈한 삶을 살았으며 『기국부(杞菊賦)』를 지었다.  글에서 소식이 자신과 비교하며 모티브로 삼은 대상이다.</definition>
		</sense>
	</te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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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mma>
			<hanmun>杞菊</hanmun>
			<korean>기국</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구기자(枸杞子)와 국화(菊花).</definition>
			<sense_note>식용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로, 고전문학에서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청빈한 선비의 삶과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lemma>
			<hanmun>以自廣</hanmun>
			<korean>이자광</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넓히다(위로하다).</definition>
			<sense_note>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문학적 승화를 통해 곤궁한 현실 속에서도 내면의 여유를 잃지 않고 스스로를 달래는 달관의 자세를 뜻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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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mma>
			<hanmun>膠西</hanmun>
			<korean>교서</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지명. 현재의 산둥성 자오저우(膠州) 일대.</definition>
			<sense_note>소식이 밀주(密州, 교서 지역)의 태수로 부임하여 극심한 흉년과 가난을 겪었으며,  시기에 육구몽을 떠올리며  부(賦)를 지었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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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rm type="Person" id="">
		<lemma>
			<hanmun>劉君廷式</hanmun>
			<korean>유군정식</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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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유정식(劉廷式). 당시 소식과 함께 밀주(密州)의 통수(通守, 부시장 격)로 재직하던 인물.</definition>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誑口</hanmun>
			<korean>광구</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입을 속이다.</definition>
			<sense_note>  잔, 고기   먹지 못하고 맛없고 질긴 풀과 나무(기국)를 뜯어 먹으며 굶주린 배와 입맛을 간신히 달래는 비참한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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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rm type="Person"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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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陰將軍</hanmun>
			<korean>음장군</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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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후한(後漢) 광무제의 처남인 음장군 음식(陰識).</definition>
			<sense_note>정단(井丹)에게 보리밥과 파를 대접했다는 고사의 인물로, 소식은  고사를 빌려 자신이 먹는 구기자와 국화가 보리밥과 파보다도 못한 비루한 음식임을 강조한다.</sense_note>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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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井丹</hanmun>
			<korean>정단</korean>
		</lemma>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후한(後漢)의 학자. 자는 대춘(大春). 지조가 높고 오만하기로 유명했다.</definition>
			<sense_note>음장군이 차려준 거친 보리밥과 파를 보고는 냄새도 맡지 않고 거절했다. 꼿꼿한 선비의 표상으로, 소식은 벼슬자리에 연연하며 잡초나 씹어 먹는 자신의 처지를 정단과 대비하여 비판한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Concept" id="">
		<lemma>
			<hanmun>听然</hanmun>
			<korean>은연</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빙그레 웃는 모양. ('听'은 '들을 청(聽)'의 이체자가 아니라, 웃을 은(听) 자로 쓰임)</definition>
			<sense_note>세상의 부귀영화나 가난에 얽매이는 세속적 가치 기준을 초월한, 달관(達觀)의 미소를 나타낸다.</sense_note>
		</sense>
	</term>
	<term type="Grammar"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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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hanmun>
			<korean></korean>
		</lemma>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어떤 이는 ~하고, 어떤 이는 ~하다.</definition>
			<sense_note>원문의 '所粱肉'은 필사 과정의 오류(오탈자)로 보이며, 문맥과  구절(或糠覈而匏肥)과의 대구를 고려할  '或粱肉(혹량육)'으로 교정하여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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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何侯方丈</hanmun>
			<korean>하후방장</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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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서진(西晉)의 정승 하증(何曾)이 극도로 사치스러워 밥상을 사방 1장(丈) 크기로 차렸다는 고사.</definition>
			<sense_note>매일  전(錢)의 식대를 쓰면서도 "젓가락  곳이 없다"고 투덜거렸던 하증의 일화에서 유래하여, 부유함과 사치의 극치를 상징한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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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rm type="Event"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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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庾郎三九</hanmun>
			<korean>유랑삼구</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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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남조(南朝) 제(齊)나라의 유고지(庾杲之)가 가난하여   가지 부추(파) 반찬만 먹었다는 고사.</definition>
			<sense_note>임방(任昉)이라는 사람이 "누가 유랑을 가난하다 했는가? 3 곱하기 9는 27이니 무려 스물일곱 가지 반찬을 먹는다네"라고 농담한 데서 유래했다. 하후방장과 대조되어 극심한 가난을 상징한다. (초안의 유신 관련 내용은 명백한 역사적 오류임)</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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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hanmun>
			<korean></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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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e scope="this_text_unit">
			<definition>볶은 곡식 가루, 미숫가루. 혹은 휴대하기 좋게 만든 마른 식량.</defi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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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西河</hanmun>
			<korean>서하</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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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장수(長壽)로 유명한 지역의 하나.</definition>
			<sense_note> 문헌에 서하 지역의 어떤 여인이 구기자를 먹고 수백 살을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남양(南陽)과 함께 장수의 대명사로 쓰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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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mun>南陽</hanmun>
			<korean>남양</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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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se scope="general">
			<definition>장수(長壽)로 유명한 지역의 하나.</definition>
			<sense_note>남양 지방 감곡(甘谷)이라는 곳의 물가에 국화가 무성했는데,  꽃잎이 떨어진 계곡물을 마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장수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sense_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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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lang="KOR" status="final" model="Gemini3.1pro">
천수생(육구몽)은 스스로 이르길 평소 구기자와 국화를 즐겨 먹는데, 여름 5월이 되어 가지와 잎이 늙고 뻣뻣해져 기미(氣味)가 쓰고 떫어짐에도 여전히 먹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하여 부(賦)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나는  말을 의심하며 생각하길, 선비가 불우한 때를 만나 곤궁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은 옳으나, 굶주려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씹어 먹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지나치다고 여겼다. 그런데 내가 벼슬살이를   19년에 집안은 날로 가난해져, 입고 먹는 봉양은 아마도 옛날만 못하게 되었다. 교서(膠西)의 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서는 내심  번쯤은 배불리 먹을  있으려니 기대했으나, 관사의 부엌은  비어  근심을 견딜  없었다. 날마다 통수(通守) 유정식 군과 함께  성의 버려진 채마밭을 돌며 구기자와 국화를 구해 먹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웃었고, 그러한 연후에야 비로소 천수생의 말이 믿을 만하고 거짓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후기국부(後杞菊賦)」를 지어 스스로를 조롱하고, 또한 이를 해명하며 이른다.

「아아, 선생이여! 누가 당신을 당상에 앉혀 태수라 부르게 하였소? 앞에서는 빈객들이 찾아와 청하고, 뒤에서는 아전들이 분주히 오가오. 아침 관아 일은 오시(午時)에나 끝나고, 저녁 좌정은 유시(酉時)를 넘기오. 일찍이    제대로 차려내지 못하고, 풀과 나무를 뜯어 주린 입을 속일 뿐이라오. 밥상을 마주하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젓가락을 들면 목이 메어 헛구역질을 하오. 옛날 음장군(陰將軍)이 보리밥과  잎을 차려주었을 때도 정단(井丹)은 밀쳐내고 냄새조차 맡지 않았거늘. 괴이쩍소, 선생이 이토록 관직에 미련을 두는 것이. 어찌 고향 산천에는 먹을 것이 없단 말이오?」

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인생  세상은 팔꿈치를 굽혔다 펴는 것처럼 짧은 것이오. 무엇이 가난이고, 무엇이 부유함이겠소?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무엇이 추함이겠소? 어떤 이는 거친 겨를 먹고도 박처럼 살찌고, 어떤 이는 고량진미를 먹고도 검고 여위오. 하후(何侯)의 사방  장(丈)에 이르는 진수성찬이 있고, 유랑(庾郞)의 스물일곱 가지 부추 반찬 농담도 있는 법이오. 풍족함과 궁핍함을 꿈속에서 비교해 본들, 마침내   썩어 없어지는 흙으로 똑같이 돌아갈 뿐이라오. 나는 이제 구기자를 양식으로 삼고 국화를 미숫가루로 삼으려 하오.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꽃과 열매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으니, 바라건대 서하(西河)와 남양(南陽) 사람들의 장수를 누림에 가깝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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