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601060:주현왕28년.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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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顯王 28년 기록 비교

*첫 번째 프롬프트

다음은 《사기》, 《자치통감》, 《통감절요》의 주나라 현왕 28년에 대한 기록입니다. 《자치통감》은 《사기》에서, 《통감절요》는 《자치통감》에서 해당 부분을 절록(節錄)했는데,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절록했는지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1) 《사기》와 《자치통감》의 내용을 각각 가로로 긴 박스에 넣어서 보여주되, 《사기》 〈손자오기열전〉과 《자치통감》의 글자가 동일한 부분은 파란색으로 표시하고, 《사기》 〈전경중완세가〉와 동일한 부분은 보라색으로 표시해 주세요.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일치도가 높은 쪽을 표시해 주세요.

2) 위의 박스와 별개로 《자치통감》과 《통감절요》의 내용을 각각 가로로 긴 박스에 넣어서 보여주되, 《자치통감》과 《통감절요》의 글자가 동일한 부분은 주황색으로 표시해 주세요.

3) 이때 이체자와 대표자 관계의 글자는 초록색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표점의 차이는 표시하지 마세요. 그리고 출력은 위키백과 문법에 맞게 해주세요.

*AI 답변

  • 참고: 曰/日, 到/剄, 白/亡, 勝/盼 등은 자형이 비슷해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식 이체자-대표자 관계로 보기 어려워 초록색으로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다른 견해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1. 《사기》 ↔ 《자치통감》 비교

범례: 〈손자오기열전〉과 일치 / 〈전경중완세가〉와 일치 / 이체자-대표자 관계

《史記》〈孫子吳起列傳〉

後十三歲,魏與趙攻韓,韓告急於齊。齊使田忌將而往,直走大梁。魏將龐涓聞之,去韓而歸,齊軍既已過而西矣。孫子謂田忌曰:「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齊號爲怯,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兵法,百里而趣利者蹶上將,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使齊軍入魏地爲十萬灶,明日爲五萬灶,又明日爲萬灶。」龐涓行三日,大喜,曰:「我固知齊軍怯,入吾地三日,士卒亡者過半矣。」乃棄其步軍,與其輕銳倍日行逐之。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馬陵道陜,而旁多阻隘,可伏兵,乃斫大樹白而書之曰「龐涓死此樹下」。於是令齊善射者萬弩,夾道而伏,期曰「暮見火舉而俱發」。龐涓果夜至斫木下,見白書,乃鉆火燭之。其書未畢,齊軍萬弩俱發,魏大亂相失。龐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曰:「遂成豎子之名!」齊因乘勝其軍,虜太子申以歸。孫臏以此名顯天下,世傳其兵法。

《史記》〈田敬仲完世家〉

(宣王)二年,魏伐趙。趙與韓親,共擊魏。趙不利,戰於南梁。宣王召田忌復故位。韓氏請救於齊。宣王召大臣而謀曰:「蚤救孰與晚救?」騶忌子曰:「不如勿救。」田忌曰:「弗救,則韓且折而入於魏,不如蚤救之。」孫曰:「夫韓、魏之兵未而救之,是吾代韓受魏之兵,顧反聽命於韓也。且魏有破國之志,韓見亡,必東面而於齊矣。吾因深結韓之親而晚承魏之,則可重利而得尊名也。」王曰:「善。」乃陰之使者而遣之。韓因恃齊,五戰不勝,而東委國於齊。齊因起兵,使田忌、田嬰,孫子爲帥,救韓、趙以擊魏,大敗之馬陵,殺其將龐涓,虜魏太子申。

《資治通鑑》〈周紀〉顯王 28년 (史記 대비)

二十八年。魏龐涓伐韓。韓請救於齊。齊威王召大臣而謀曰:「蚤救孰與晚救?」成侯曰:「不如勿救。」田忌曰:「弗救則韓且折而入於魏,不如蚤救之。」曰:「夫韓、魏之兵未而救之,是吾代韓受魏之兵,顧反聽命於韓也。且魏有破國之志,韓見亡,必東面而於齊矣。吾因深結韓之親而晚承魏之,則可重利而得尊名也。」王曰:「善。」乃陰使而遣之。韓因恃齊,五戰不勝,而東委國於齊。齊因起兵,使田忌、田嬰、田盼之,孫子爲師,以救韓直走魏都。龐涓聞之,去韓而歸。魏人大發兵,以太子申爲將,以禦齊師。孫子謂田忌曰:「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齊號爲怯。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兵法:『百里而趣利者蹶上將,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使齊軍入魏地爲十萬灶,明日爲五萬灶,又明日爲萬灶。龐涓行三日,大喜曰:「我固知齊軍怯,入吾地三日,士卒亡者過半矣!」乃棄其步軍,與其輕銳倍日行逐之。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馬陵道而旁多阻隘,可伏兵,乃斫大樹,白而書之曰:「龐涓死此樹下!」於是令齊善射者萬弩夾道而伏,期暮見火舉而俱發。龐涓果夜至斫木下,見白書,火燭之,讀未畢,萬弩俱發,魏大亂相失。龐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曰:「遂成豎子之名!」齊因乘勝魏師,虜太子申。


2. 《자치통감》 ↔ 《통감절요》 비교

범례: 두 책의 글자가 동일한 부분

《資治通鑑》〈周紀〉顯王 28년 (通鑑節要 대비)

二十八年。魏龐涓伐韓。韓請救於齊。齊威王召大臣而謀曰:「蚤救孰與晚救?」成侯曰:「不如勿救。」田忌曰:「弗救則韓且折而入於魏,不如蚤救之。」孫臏曰:「夫韓、魏之兵未弊而救之,是吾代韓受魏之兵,顧反聽命於韓也。且魏有破國之志,韓見亡,必東面而訴於齊矣。吾因深結韓之親而晚承魏之弊,則可受重利而得尊名也。」王曰:「善。」乃陰許韓使而遣之。韓因恃齊,五戰不勝,而東委國於齊。齊因起兵,使田忌、田嬰、田盼將之,孫爲師,以救韓,直走魏都。龐涓聞之,去韓而歸。魏大發兵,以太子申爲將,以禦齊師。孫子謂田忌曰:「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齊號爲怯。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兵法:『百里而趣利者蹶上將,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乃使齊軍入魏地爲十萬灶,明日爲五萬灶,又明日爲二萬灶。龐涓行三,大喜曰:「我固知齊軍怯,入吾地士卒亡者過半矣!」乃棄其步軍,與其輕銳倍並行逐之。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馬陵道陿而旁多阻隘,可伏兵,乃斫大樹,白而書之曰:「龐涓死此樹下!」於是令齊師善射者萬弩夾道而伏,期暮見火舉而俱發。龐涓果夜至斫木下,見白書,以火燭之,讀未畢,萬弩俱發,魏師大亂相失。龐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曰:「遂成豎子之名!」齊因乘勝大破魏師,虜太子申。

《通鑑節要》〈周紀〉顯王 庚辰 28년

魏龐涓伐韓,韓請救於齊。齊威王因起兵,使田忌、田嬰、田盼將之,孫爲師以救韓,直走魏都。龐涓聞之,去韓而歸魏。魏大發兵,以太子申爲將,以禦齊師。孫子謂田忌曰: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齊號爲怯,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兵法:百里而趣利者,蹶上將;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乃使齊軍入魏地,爲十萬灶,明日爲五萬灶,又明日爲二萬灶。龐涓行三曰,大喜曰:我固知齊軍怯,入吾地。三曰士卒亡者過半矣。乃棄其步軍,與其輕銳倍並行逐之。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馬陵道陿,而旁多阻隘,可伏兵。乃斫大樹,白而書之曰:龐涓死此樹下。於是令齊師善射者萬弩夾道而伏,期暮見火。舉而俱發。龐涓果夜至,斫木下,見白書,以火燭之,讀未畢,萬弩俱發,魏師大亂相失。龐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齊因乘勝大破魏師。


*두 번째 프롬프트

  • 문헌을 절록하는 경우, 여러가지 다양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첨부한 자료에서 《자치통감》이 《사기》 〈손자오기열전〉과 〈전경중완세가〉에서 절록하면서 발생한 오류가 발견되나요? 있다면 유형화하여 표로 보여주세요. 마찬가지로 《통감절요》가 《자치통감》을 절록하면서 발생한 오류가 있다면 표로 보여주세요. 출력은 위키백과 문법에 맞게 해주세요.

*AI 답변

  • 참고: 각 단계에서 실제로 발생한 오류를 좀 더 정밀하게 짚어보겠습니다. 단순 축약이 아니라 '사실관계·인과관계·자구'가 어긋난 지점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1. 《사기》→《자치통감》 절록 오류

《사기》(손자오기열전·전경중완세가) → 《자치통감》 절록 오류
유형 전거(《사기》) 《자치통감》 서술 발생한 문제
사건 주체 왜곡 〈손자오기열전〉 "魏與趙攻韓, 韓告急於齊" (위나라와 조나라가 함께 한을 침공) "二十八年。魏龐涓伐韓。" 원래 위·조 연합군이 한을 공격한 사건인데, 조나라의 참전 사실이 사라지고 위나라(방연) 단독 침공으로 바뀜. 두 열전을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전쟁의 주체 구성이 실제와 달라짐
수치 오류 〈손자오기열전〉 "又明日爲三萬灶" "又明日爲二萬灶" 손빈이 줄여나간 취사용 아궁이 수(10만→5만→3만)가 "10만→5만→2만"으로 바뀌어, 원전의 구체적 수치가 달라짐(이후 절록서인 《통감절요》에도 그대로 이어짐)
인명 혼용 〈손자오기열전〉은 시종 孫子로 지칭 / 〈전경중완세가〉는 孫子(대화 부분) 표기 병략 대화 부분에서는 孫臏曰로, 전투 서술 부분에서는 孫子謂田忌曰로 한 사건 안에서 지칭이 혼용됨 두 열전을 짜깁기하면서 같은 인물(손빈)에 대한 호칭이 문단마다 달라져, 독자가 동일인임을 바로 알아채기 어려움
인명 대체 〈전경중완세가〉 "騶忌子曰: 不如勿救" "成侯曰: 不如勿救" 추기(騶忌)의 개인 이름 대신 훗날의 봉호(성후)로 대체되어, 사전 설명 없이 봉호만 나오면 같은 인물인지 알기 어려움
설명 구절 누락으로 인한 지리적 맥락 단절 〈손자오기열전〉 "田忌將而往, 直走大梁。魏將龐涓聞之, 去韓而歸, 齊軍既已過而西矣。" "…直走魏都。龐涓聞之, 去韓而歸。魏人大發兵…" (方涓이 돌아올 때 제나라 군대가 이미 지나쳐 서쪽으로 가 있었다는 구절 누락) 방연이 한에서 급히 회군했을 때 제나라 군대가 이미 위나라 영내 깊숙이 진입해 있었다는, 이후 '아궁이 줄이기' 계책이 성립하는 지리적 전제가 빠져 서사의 논리적 연결이 약해짐
출처 불명 정보 삽입 두 열전 어디에도 없음 "使田忌、田嬰、田盼將之" / "魏人大發兵, 以太子申爲將以禦齊師" 전거로 제시된 두 편에는 없는 장수(전반)와 위나라 측 대응 조치(태자 신을 장수로 삼음)가 별도 출처 없이 삽입되어, 두 열전만으로는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섞임


2. 《자치통감》→《통감절요》 절록 오류

《資治通鑑》 → 《通鑑節要》 절록 오류
유형 《資治通鑑》 서술 《通鑑節要》 서술 발생한 문제
핵심 전략 논의 전체 삭제 "齊威王召大臣而謀曰: 蚤救孰與晚救? 成侯曰: 不如勿救。田忌曰: 弗救則韓且折而入於魏…孫臏曰: 夫韓魏之兵未弊而救之…吾因深結韓之親而晚承魏之弊, 則可受重利而得尊名也。王曰: 善。乃陰許韓使而遣之。韓因恃齊, 五戰不勝, 而東委國於齊。" 전체 삭제, "魏龐涓伐韓, 韓請救於齊" 바로 다음에 곧장 "齊威王因起兵" 손빈이 일부러 구원을 늦춰 한을 피폐하게 만든 뒤 개입해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이 고사의 핵심 전략이 통째로 사라짐. 그 결과 제나라가 한의 요청을 받자마자 즉시 군대를 일으킨 것처럼 읽혀, 실제 사건의 인과관계(다섯 번 패전 후에야 개입)와 정반대의 인상을 줌
수치의 연쇄적 계승 "又明日爲二萬灶" (이미 《사기》 단계에서 三萬→二萬으로 바뀐 수치) "又明日爲二萬灶"로 그대로 답습 앞 단계에서 발생한 수치 오류를 검증 없이 그대로 이어받아, 《사기》 원전의 수치(三萬)와 두 단계 건너 완전히 달라진 채 고정됨
  • 정리

가장 심각한 오류는 《통감절요》 단계의 전략 논의 삭제입니다. 이 고사의 본래 요지는 "군사적 계책"(아궁이를 줄여 방연을 유인)뿐 아니라 "정치적 계책"(한이 힘 빠질 때까지 구원을 늦춤)이 함께 있다는 데 있는데, 《통감절요》는 후자를 통째로 들어내면서 사건의 인과관계를 사실상 반대로 읽히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자치통감》 단계의 오류는 대부분 두 개의 서로 다른 사기 열전을 하나의 사건으로 봉합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사건 주체(조나라의 소실)나 수치(三萬→二萬), 호칭(孫子/孫臏, 騶忌子/成侯)이 어긋난 경우가 많습니다.